#1 수도권에서 자가 폴 주유소(정유사 간판 없이 자체 상표로 영업하는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요즘 기름 구하느라 애를 태우고 있다. 그 동안 대리점을 통해 휘발유, 경유를 공급받아 왔는데, 정유사들이 휘발유, 경유 가격을 ℓ 당 100원씩 내리겠다고 발표한 지난달 7일 이후 기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A씨는 18일 본보 기자에게 "가격을 내린 정유사들이 손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들의 직영(直營)주유소에만 기름을 주고 있다"며 "때문에 팔 기름이 없는 다른 일반 주유소는 가짜 휘발유 제조업자들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2 서울에서 정유사와 직거래를 하는 자영(自營)주유소를 운영하는 B씨는 요즘 주변 주유소들과의 눈치싸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3월 말"곧 기름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정유사측 말만 믿고 당시 한 달치 재고를 채웠다. 그런데 1주일 만에 정유사들이 직영 주유소들을 통해 판매 가격을 한꺼번에 내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판매가격을 낮춰야 했다."4월에만 2,500만원의 손해를 봤다"는 B씨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는 정유사들은 당장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영세 주유소는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정유사들의 공급량 통제와 일방적 가격 인하 등으로 일반 주유소들이 신음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가폴ㆍ자영 주유소와 영세 대리점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 소비자들이 정유사가 내렸다는 가격 만큼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 정유사들이 갖가지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현재 정유사의 공급 물량 축소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자가폴 주유소. 이들 주유소는 싼 제품을 골라 기름을 받고 가맹점 수수료도 내지 않아 정유사의 직영 주유소 보다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아 왔다. 정부 역시 지난달 석유시장의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를 이끌어 내기 위해 현재 6%인 자가폴 주유소를 확대하겠다며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정유사들이 지난달 공급 가격을 내리는 대신 공급량을 줄이고 있다. A씨는 "일부 주유소는 급한 마음에 나중에 폴을 달겠다고 사정하면서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가폴을 키우겠다는 지식경제부나 공정거래위원회에 하소연을 해봐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만 하더라"고 말했다.
영세 대리점들도 물건이 없어 힘겹기는 마찬가지. 한국석유유통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약 400개 대리점 중 절반은 정유사와 장기 계약을 맺고 물건을 공급받고 있는 반면, 나머지는 현물을 받아 주유소에 판매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영세 대리점은 물건을 확보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주유소들이 이처럼 정유사에 꽉 잡힌 배경에는 '배타조건부 계약'이라는 족쇄가 있다. 이는 정유사가 주유소에게 자사 상표표시, 보너스 시스템 및 제휴카드 서비스, 각종 시설 지원 등을 조건으로 자사 제품만을 쓰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석유산업 경쟁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4월 기준으로 정유사들이 배타조건부 계약을 적용한 자영주유소는 8,721곳. 정유사들은 만일 주유소가 공급 조건을 어기면 계약해지, 손해배상 청구, 디브랜딩(폴 철거), 보너스 시스템 철거조치 등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 B씨는 "폴을 철거하거나 보너스 카드를 활용하지 못하면 바로 판매량이 줄어 울며 겨자먹기로 정유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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