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2학년생인 A군은 피곤해 만사가 귀찮았다. 때론 죽고 싶을 정도로 사는 게 비관적이었다. 부모는 걱정이 돼 A군을 데리고 진료실을 찾았다. 의사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잠이 모자라 생긴 수면박탈 증세였다. 의사 권유대로 주말 내내 푹 자고 난 A군은 몸도 마음도 상쾌해졌다.
필자는 A군 같은 학생을 진료실에서 흔히 만난다. 잠을 못 자면 불안, 우울, 초조감, 집중력 저하 등이 생긴다. 우울증 증세와 비슷하다. 환자가 잠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칫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수면을 충분히 취하면 좋아진다는 게 우울증과 수면박탈로 인한 증세와의 큰 차이점이다. 우울증과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청소년 환자에서 제일 먼저 수면 부족을 의심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잠이 부족한 청소년이 많기 때문이다.
수면의학지에 발표된 전세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면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청소년들은 어릴 때보다 덜 자고 더 늦게 잔다는 게 공통적이었다.
게다가 아시아 청소년은 북미ㆍ유럽 청소년보다 더 늦게 잠들고 수면시간도 적었다. 아시아에서 특히 우리 청소년은 중국ㆍ홍콩 청소년보다 수면시간이 더 적었다. 고교 2, 3학년생의 경우, 평일 밤에 평균 5.6~4.8시간을 자는데, 홍콩 청소년은 6.6시간을 잔다. 우리 고등학교 2, 3학년 학생들에게 하루에 몇 시간 자는 것이 이상적인지 물었을 때 7.4시간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우리 청소년이 원래 잠이 적은 것은 아니다. 더 자고 싶은데 잘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청소년이 잠이 모자란 이유를 추측해보자. 정보통신기술(IT)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집집마다 컴퓨터, TV, 핸드폰 등이 있을 것이니 이런 것 때문에 늦게 자 잠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잠이 모자란 이유를 물었을 때 컴퓨터와 TV 때문이라고 답한 청소년은 25%에 불과했고, 65%는 숙제, 야간자율학습 등 학업으로 인해 못 잔다고 답했다. 우리 청소년은 공부 때문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
그렇다면 잠을 줄여 공부하는 게 효과적일까?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수면을 박탈하면 정신이 몽롱하고 집중력이 떨어져 학습능력도 떨어진다. 유럽 청소년은 7시간 이상 잔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 그들이 효율적으로 공부하면서 낮 시간에 조는 우리 청소년을 비웃을 것이다.
연구 결과, 수면을 박탈하면 원래 걱정거리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수면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성적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면 충분히 잤을 때보다 훨씬 비관적으로 느껴진다는 뜻이다. 종종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학생들의 뉴스를 듣는다. 만성 피로와 불안에 시달리는 수면 부족상태에서 성적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극단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전인교육은 골고루 잘하는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장단점을 찾아 수용ㆍ통합해 균형있고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잠을 줄이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다른 개성을 발견하고 개발할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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