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AIDS), 곧 후천성면역결핍증만큼 조명을 받은 질병도 없다. 인체 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최초 발견 업적을 두고부터 논란이 빚어졌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박사팀과 미국 국립보건원의 로버트 갤로 박사 간 국제소송까지 벌인 끝에 2008년 프랑스팀에 노벨상이 돌아감으로써 일단락됐다. HIV와 에이즈의 상관관계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각별한 사회문화적 관심은 HIV 바이러스의 원인 때문이기도 했다. 동성애나 성매매 같은 난잡한 성생활이 발병 및 감염경로로 꼽히면서 현대인의 무절제에 대한 천형처럼 인식됐던 것이다.
■ 1981년 첫 환자가 보고된 이래 에이즈의 병력 또한 화려했다. 미국 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동성애자로 알려진 뒤 이 병으로 사망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영국의 록그룹 퀸의 전설적 아티스트 프레디 머큐리 역시 이 병으로 91년 지구에서의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스포츠 스타로는 90년대 들어 미국 농구선수 매직 존슨과 88 서울올림픽 다이빙 다관왕인 그렉 루가니스 등이 감염돼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반인들도 81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적으로 무려 2,500만명이 이 병으로 숨졌다. 2009년 말 현재 감염자수도 4,000만명을 넘겼다.
■ 에이즈는 지금까지는 불치병이었다. 완전한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 없다. 다만 근년 들어 효소 반응 억제를 통해 HIV의 증식을 막는 강력한 항HIV 약제가 잇달아 개발됐다. 또 HIV의 돌연변이 증식을 감안해 다양한 항HIV 약제를 섞어 쓰는 '칵테일요법'까지 등장해 즉각적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16일 인류 최초로 공식적인 완치 사례가 기록됐다. 주인공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티모시 레이 브라운(45)이라는 독일 남성이다.
■ 95년 양성판정을 받은 브라운 씨는 백혈병까지 겹쳐 한때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기적을 일으킨 건 2007년에 받은 골수 줄기세포 이식 수술. 이때 받은 줄기세포에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성이 있는 유전자가 포함돼 자연치유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2008년 첫 보고에서 백인종 코카시언 중 1%가 문제의 면역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 뿌리가 중세 유럽의 흑사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전해진 것이라고 추정했다. 결국 수백 년 전 흑사병과의 투쟁 속에서 에이즈를 이길 수 있는 '21세기형 인류'가 이미 등장했다는 얘기니, 놀랍고 신비롭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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