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은 내 가능성을 본 정도 아닐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연속이다. 데뷔작에 이어 두 번째 작품도 칸국제영화제 초대장을 받았다. 2008년 ‘추격자’(비경쟁부문 심야상영)에 이어 ‘황해’(주목할만한 시선 부문)로 18일 오후(현지시간) 레드 카펫을 밟은 나홍진(37) 감독에 대한 칸영화제의 관심은 유별난 편이다. 칸영화제가 신인 감독을 연달아 초청한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그의 두 영화는 개봉한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칸의 호명을 받았다. 최신작을 선호하는 칸영화제의 취향과 사뭇 배치된다.
여느 감독이라면 우쭐할 만도 한 상황이다. 그래도 그는 자꾸 “난 아직 얘”라 했고, “(초청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작비 100억원을 넘긴 ‘황해’의 흥행(227만명) 실패에 대한 보상으로 여길 만도 한데 그는 지나친 의미부여를 경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수료한 그는 “‘황해’를 졸업 작품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 제작비를 들인 졸업 작품”이라고 슬쩍 농을 던지자 그는 “제작비 이야기는 그만”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영화를 만들어 관객과 함께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나 감독을 17일 오후 칸의 한 호텔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칸영화제에서 선 보이는 ‘황해’는 편집 등 후반작업 등을 거쳐 새롭게 단장했다.
-칸영화제 상영을 위해 재편집한 것인가.
“그렇진 않다. DVD 등 부가판권 시장을 생각해 재편집했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개봉 뒤 한 달 정도 더 후반작업을 했다. 기존 장면을 없앴고, 새 장면을 넣어 상영시간이 16분 가량 줄었다. 재개봉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개봉판과 그냥 좀 다른 영화다.”
-칸영화제를 자주 오니 예술영화 감독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예술영화 감독이라니… 나는 상업영화 감독이다. 영화제 진출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 내 영화의 어떤 요소가 영화제 관계자를 어필했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영상이든 음향이든 이야기이든 어느 한쪽에 치우쳐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황해’가 재조명 받게 되었다 생각하나.
“‘추격자’와 ‘황해’는 둘 다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작업을 한 영화다. 한 작품은 흥행을 했고, 한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두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알아내는 일은 나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고민하고 계속 고민할 것이다. 칸영화제 초대로 ‘황해’가 재조명 받는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 여러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었고 칸영화제를 첫 번째로 왔다고만 생각한다.”
-‘추격자’이후 결혼 등 삶의 변화가 영화에 영향을 주진 않았나.
“난 아직 정말 어리다고 생각한다. 사회 생활하는 보통 성인들에 비하면 내 경험은 참 보잘것없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자체가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난 굉장히 어린애다. 영화를 보는 분들이 저보다 많이 (세상을) 안다는 게 두렵다. 20대 연기자가 50대 역할 하면 굉장히 어색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보면 난 말도 안 되는 감독이다.”
-뛰어난 신예로 주목 받는 게 부담이 되진 않나.
“난 철 좀 들었으면 좋겠고 어른이 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론 이제 걸음마하며 두 걸음 뗀 정도다. 가능성을 보였지만 제대로 뭔가를 보인 적은 없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안 된다. 칸영화제도 가능성을 보고 ‘황해’를 상영하자고 제안한 듯하다. 지금의 나는 딱 그 정도 아닐까.”
-자신이 재능이 많다 생각하나 아니면 노력형이라 여기나.
“난 재능이 있다고 그저 믿고 싶은 유형이다. 그게 없으면 이 힘든 일을 견뎌낼 수 없다. 살아오면서 굉장히 노력해도 지겨워하지 않은 게 영상이었다. 내 몸의 진액을 다 뽑아서라도 작품 하나 만들자며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 연출은 아이를 낳은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영화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듯 보인다.
“데뷔하기 전까지 보낸 10년 가량의 시기가 너무 힘들었다. (영화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각오로 앞이 깜깜하기만 했던 당시를 견딜 수 있었다. 컵라면으로 하루를 버티고, 아르바이트로 돈 벌면 하루에 밥 한끼 먹으며 보낸 시기다. 목숨을 스스로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내가 산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고민도 많이 했다. 그렇게 영화를 절실하게 생각했다.”
칸=글ㆍ사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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