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의 힘에 취해… 그들의 '나쁜 정사'
"권력은 최고의 최음제다."
미 닉슨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는 권력과 성(性)의 상관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1970년대 초 신인 여배우와의 추문에 대해 해명하면서 한 말인데, 권력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성폭행 혐의로 중도 사퇴하면서 성추문으로 곤욕을 치른 권력자들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영국의 온라인 뉴스매체인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IBTimes)는 스트로스 칸 총재가 체포된 뒤 세계 정치권의 10대 섹스스캔들을 선정, 보도했는데 그의 이름을 3위에 올렸다.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한 정치인들
성추문에 휘말린 권력자 중에선 모세 카차프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대통령 재직 중이던 2006년 무려 10명의 여성을 성폭행 또는 성추행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여기엔 강간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탄핵까지 피해갔지만, 결국 2007년 1월 임기 만료를 2주 남긴 채 불명예 퇴진했다. 2009년 3월 강간죄로 기소돼 2010년 12월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지난 3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63년 영국 보수당 해럴드 맥밀런 내각의 국방장관이었던 존 프로퓨모는 갓 스무살 넘은 콜걸과의 혼외정사로 공직을 떠나야 했다. 프로퓨모는 귀족가문 출신으로 차기 총리로까지 거론됐지만 콜걸의 애인이었던 당시 주영 소련대사관 주재 무관이 스파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낙마했다. 영국 언론들은 이를 '프로퓨모(profumo) 사건'이라 부르며 20세기 영국 최대 섹스 스캔들로 꼽는다.
정치인의 도덕성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미국에선 성추문으로 대권 도전을 포기한 이들이 여럿 있었다. 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두 차례 나섰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6개월 앞서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부하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중도 하차했다.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는 2008년 사법당국에 의해 고급 매춘조직의 주요 고객이었음이 들통났다. 그는 최소 7차례 매춘 업소를 찾았으며, 호텔을 예약하면서 선거자금까지 유용한 혐의를 받았다. 뉴욕주 검찰총장 출신으로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그는 이 때문에 결국 물러나야 했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의 부인인 아이리스 로빈슨 전 의원은 2008년 자신보다 40살 아래인 청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5만 파운드를 끌어다 그의 카페에 투자한 혐의를 받았다. 북아일랜드 의회는 피터 로빈슨 총리가 아내의 금전거래 사실을 알았는지에 대해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로빈슨 총리는 3주간 총리직에서 물러나 있어야 했다. 아이리스 전 의원은 출당 조치됐다. 짐 맥그리비 전 뉴저지 주지사는 재임 중이던 2004년 자신의 측근이었던 골란 시펠과의 동성애 사실을 고백한 뒤 사임했다.
섹스스캔들로 조롱의 대상된 지도자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은 '지퍼게이트'로 불린다. 그는 1995~1997년 백악관 인턴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수 차례 성적인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드러나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상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임기는 마쳤지만, 정치인 관련 성추문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됐다.
얼마 전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가정부와 무려 20년간 바람을 피워 아이까지 낳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는 정자(sperm)와 종결자(terminator)를 합성한 '스퍼미네이터'란 별명까지 얻었다. 다행히 주지사 임기는 마친 뒤라 중도 사퇴는 면했다.
현직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관련된 언론기사에는 섹스파티를 지칭하는 은어인 '붕가붕가'(Bunga Bunga)가 빠지지 않는다. 그는 현재 미성년 성매매 혐의로 재판중이다. 1994년 총리에 오른 뒤 수많은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총리직을 유지해왔지만, 이번엔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최근 미 공화당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자신의 비서와 6년간 혼외정사를 즐긴 사실이 알려지자 두번째 부인과 이혼한 뒤 아예 그 여성을 세 번째 아내로 들였다.
신정훈 기자 hoon@hk.co.kr
■ 정치인 빈번한 성추문 왜?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존 에드워즈 전 미 상원의원,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권력의 정점에 있다 성추문에 휘말리며 추락한 정치인들이다. 정치인의 섹스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명예와 평판이 생명인 이들이 들통날 경우 파멸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보통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규범을 자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 및 환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1987년 민주당 대권 주자였던 게리 하트와 패션모델 도나 라이스의 섹스 스캔들을 보도한 기자 출신 톰 피들러 보스턴대 교수는 최근 미 공영 라디오인 NPR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성추문은 유명세와 권력이 가져오는 기회와 자만심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그는 "권력을 잡게 되면 유혹의 기회가 많아지는데다 자만감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들이 준수하는 행동 규범이나 도덕률을 무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시간 오클랜드 대학에서 진화 심리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토드 새클포드 교수도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불륜에 휩싸이기 쉽다는 증거는 많다"며 피들러 교수에 힘을 실어줬다.
심리학자인 래리 조세트는 다른 해석을 내린다. 인간에게는 자기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욕구,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의 요소가 결합된 '어두운 면'이 있는 데 이 중 하나 이상이 강해지면 성적 편력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는 "유명 정치인들은 특히 자기애가 강해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치인이 섹스 스캔들에 더 많이 빠지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잖다. 유명인의 경우 사건이 더 크게 보도돼 그렇게 느껴질 뿐이지 정치인도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기혼 남성의 15% 가량이 불륜을 저지르는 데, 이 경우 미국 의회 의원의 55명 정도가 불륜을 저질렀거나 저지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들이다. 물론 여성이 주연인 때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에 소재한 '윤리와 책임을 위한 시민'의 집행이사인 멜라니 슬로안은 "남성 정치인의 경우 용서가 되기도 하지만 여성은 사회적으로도 용납이 안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 섹스 스캔들의 결과를 매우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배성재 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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