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방문… 북아일랜드 갈등 여전독립투사 추모공원 헌화… BBC "양국 역사적 순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7일(현지시간) 오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도착해 3박4일간의 국빈 방문에 들어갔다. 영국 국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1921년 아일랜드 독립 이후 처음이며, 1911년 조지 5세가 당시 영국령이었던 더블린을 찾은 지 100년 만이다.
영국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피로 얼룩진 양국 과거사를 청산하고 1998년 체결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영국 BBC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당시 우주비행사 암스트롱의 말에 비유해 ‘여왕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양국간 역사에서는 엄청난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등 북아일랜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테러 위협이 잇따라 양국 정부가 긴장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남편 필립공과 함께 대통령 관저에서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과 엔다케니 총리를 만난 후 아일랜드 추모공원을 찾아 묵념하고 헌화했다. 추모공원은 과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아일랜드인들의 혼이 서려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또 전쟁기념관과 1920년 아일랜드식 축구인 ‘게일릭(gaelic)’ 경기 도중 영국군의 발포로 14명이 숨진 크로크 파크 경기장도 방문한다.
192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독립 문제를 놓고 영국과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독립을 주장하는 구교도와 영국 잔류를 원하는 신교도 간 유혈 충돌이 극심했고, 1998년 평화협정으로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구교도가 창설한 IRA는 아직까지 북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IRA의 한 분파인 ‘진짜 IRA’ 측은 지난달 북아일랜드의 런던데리에 있는 IRA 묘지에 모여 “영국 여왕은 아일랜드 땅에서 원치 않는 인물”이라며 적개심을 드러낸 바 있다.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 직전 영국 보안당국이 IRA가 미사일과 로켓 발사대를 구입한 정황을 포착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아일랜드 군은 16일 밤 더블린 인근 메이누스에서 버스에 설치돼 있던 폭발물을 발견, 제거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17일 새벽에도 더블린 시내 한 정류장에서 폭발물로 보이는 물체가 있다는 소식이 접수돼 군 당국이 출동했으나 가짜 폭탄으로 확인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여왕의 방문 기간 안전을 위해 2,000만 파운드(약 350억원)를 투입하는 등 보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수도 더블린에는 1만 명의 경찰과 군 병력이 비상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자동차 테러를 막기 위해 수도 중심가에선 주차도 금지됐다. 여왕이 지나갈 시내 주요 도로에는 바리케이트가 촘촘히 설치됐다.
영국도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에 항의하는 테러 경고로 비상이 걸린 상태다. 지난 15일 밤 런던 중심가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전화가 접수돼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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