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철옹성처럼 단단하던 한나라당 내 친MB계가 졸지에 흩어지고 새로운 권력의 동아줄을 잡겠다고 아우성이다.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이라고 쌍심지를 돋우던 여권이 무상보육을 들고 나오고, 감세를 통해 대학등록금을 감면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다른 보수야당 대표는 자신이 당 쇄신의 걸림돌이라며 자리를 내놓았다. 사분오열됐던 야권도 야권통합이 시대의 요구라며 너도나도 열을 올리고 있다. 총선과 대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권력을 잡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이지만 민심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를 감지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다.
이명박 대통령도 달라진 듯 보인다. 감독 소홀로 부실저축은행 사태를 초래한 금융감독원을 불시에 방문해 질타를 넘어 분노의 발언들을 쏟아낸 것은 이례적이다. 쇠귀에 경 읽기처럼 내 사람만을 고집하던 인사 스타일을 이번 개각에서 포기한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재보선에서 민심이반이 심상치 않음을 절감한 탓이리라.
짙게 드리운 레임덕의 그림자
사실 요즘 MB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올 초만해도 50%를 넘나든다며 희색이 만면하던 지지율이 20%대로 주저앉았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질 경우 사실상의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라는 평가이고 보면 예삿일로 넘길 수 없다. 전세대란과 고용불안, 물가 폭등에 따른 민생위기에 저축은행 불법인출 사태까지 실패한 경제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시중에는 일이 안 풀리면 "이게 다 MB 때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돌 만큼 동네북 신세다.
한나라당만 해도 그렇다. 친이계 탈출이 러시를 이루고 주이야박(晝李夜朴)이란 말이 낯설지 않게 됐다. 어떤 최고위원은 "MB에게 정치적 동지는 없고 동업자만 있다. 앞으로는 더 외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권력의 속성이고 세상 이치인 것을.
이쯤에서 이 대통령은 탈당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임기말 탈당 현상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신이나 정당정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만의 왜곡된 정치문화가 낳은 기형적인 현상임에 분명하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레임덕에 빠져 허덕이다 결국 탈당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을 밟아왔다.
이 대통령도 다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서서히 민심이 이반하면서 침몰하고 있는 이명박호를 타고 계속 항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을 업고서 총선과 대선을 치를 경우 모두가 공멸할 게 뻔한 상황에서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희생양이 결국 이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MB는 동남권 신공항 공약 파기책임을 추궁하는 일부 의원들의 탈당 요구에 대해 "막말을 피하면서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며 탈당 요구를 '막말'로 규정하고 일축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대통령에 대한 원성이 비등점으로 치닫고 턱밑에까지 치고 올라왔다. 유럽 순방 중 벌어진 '국무회의 지각개회 사태'는 공직사회 레임덕을 상징하는 사례다. 어차피 맞닥뜨리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스스로 탈당을 선언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MB 자신도 임기 초부터 줄곧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해왔다. 오로지 일하는 정부와 대통령으로 평가 받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당적 버리고 국정에 전념하길
지금 산적한 과제가 오죽 많은가. 이제야말로 정파나 지역별 이해관계를 떠나 초연하게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국정에 전념할 시점이다. 그 자신이 외쳤던 친서민과 공정사회에 초석을 놓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의도는 잊고 시장과 거리로, 4대강 현장으로 달려나가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근심을 달래주기 바란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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