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한국현대사학회 창립 학술대회
역사 전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그 동안 독도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간에, 동북공정을 두고 한국과 중국간에 벌어졌던 국가간의 전쟁이 아닌, 국내 역사 교과서 기술을 둘러싼 내부 전쟁이다.
기존 역사 교과서를 비판하는 진영의 학자들이 20일 서울교대에서 한국현대사학회(회장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창립, ‘한국의 현대사학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한 기념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이 학회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역사 교과서가 한국현대사를 지정학적으로 남한과 북한 상황에만 몰입해 기술한 측면이 많았으며,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세계 냉전체제 속에서 발생한 것이 대부분인데도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런 맥락이 올바르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학회에는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전공학자뿐 아니라 정치외교사 경제사 사회사 예술사 종교사 군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학회에 명단을 올린 교수(명예 교수 포함)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병직ㆍ이인호ㆍ박효종ㆍ이영훈ㆍ전상인(이상 서울대), 유영익ㆍ주석춘(이상 연세대), 김영호(성균관대)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학자들을 포함해 진용도 화려하다. 섭외위원장을 맡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근ㆍ현대사 교과서가 나오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많다”며 “학자들 간의 소통부족을 극복하고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종합적으로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해 학회를 설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창립기념 학술대회의 발표 내용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한국현대사 인식의 새로운 진보를 위한 성찰’이란 발제문에서 “세계 현대사적 맥락으로 한국사를 조망하고 반(反)반공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1975년 인도차이나 공산화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던 세계사적 공산화 흐름을 언급하지 않고 반공주의를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은 세계사의 투영이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반공주의를 반대하는 반(反)반공주의를 표방하는 것만으로 선으로 인식하던 관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학회는 후세의 역사교육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발표문에서 “역사교육이 문제가 된 것은 2003년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근ㆍ현대사 과목이 독립해 현대사 학계의 여물지 않는 결과물들이 교과서에 반영된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내년부터 새로 만들기 시작할 교과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국현대사 총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3개 학회로 구성된 기존 역사 교과서 진영에서는 새 현대사학회가 6년 전의 ‘교과서 포럼’ 복제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기존 역사 교과서 진영은 16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한국사 교육과정 논란과 역사교육 정상화’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현대사학회의 20일 학술대회를 비판하며 맞불을 놓는 성격이 강하다.
더욱이 이날 학술대회에는 현직 교사들도 참여해 앞으로 역사 전쟁이 치열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송지선 서울 구로고 교사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다”며 “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어느 순간 과도한 국가주의의 틀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거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치를 담는 수업을 구성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사의 내용 구성 자체나 서술 방식도 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37명을 모아 ‘한국사교과서집필자협의회’를 구성한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학문적으로 학회를 설립하겠다는 것은 찬성한다”며 “그러나 출범 과정이 지난 2007년 교과서 포럼에서 극단적 우파 학자가 앞장서 얘기하면 이를 토대로 여론을 조성한 뒤 교과서 문제로 옮겨가는 행태와 닮아 정체성에 의심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정원 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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