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주(洪吉周, 1786-1841)란 분이 있다. 본인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지만 형이 좌의정까지 지낸 홍석주(洪奭周)고, 동생은 정조의 부마 홍현주(洪顯周)였으니, 그 집안의 혁혁함이야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세 형제는 또 모두 학자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홍길주는 광범위한 독서와 오랜 사색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에세이를 남겼는데, 학문과 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이 흘러 넘친다. 오늘 그 중 한 토막을 감상해 보자.
백성의 삶에 무심한 논쟁
홍길주는 이란 에세이 집에서 희한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 선비들은 너나없이 사서(四書), 곧 을 공부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에서 무엇을 깨치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 공자와 맹자께서 자주 말씀하시고 거듭 강조하신 바를 연구하고 실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쩌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한두 번 보이는, 책의 전체 주제와 별 상관없는 말을 따지고 들 것인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맹자는 사람은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타인을 딱한 처지를 보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그것이다. 맹자는 인간 개개인이 이런 마음을 잘 키워서 내면 가득 채우는 것이야말로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또 맹자는 백성에게 세금을 적게 거두고 그들을 전쟁이나 강제노동에 동원하지 않는다면 백성의 삶이 풍족해질 것이고, 그 결과 백성들의 자발적 헌신으로 나라가 강성해질 것이라 반복해서 주장한다. 란 책 대부분은 이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맹자가 가장 힘써 말한 이런 부분의 실천을 궁리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를 얼음에 박 밀듯 읽고 외지만, 알아듣기 쉬운 그런 말의 실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홍길주가 살던 시대의 지식인들은, 알다시피 신유학(新儒學), 곧 성리학에 골몰했다. 입에서 나오느니 '이(理)' '기(氣)' '심(心)' '성(性)'이다. 보다시피 이런 말들은 참으로 막연한 말이다. 아무리 궁리하고 헤집어 보아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결론이라 할 것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말들은 사서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에 한두 번, 에 한두 번 보일 뿐이다. 와 에도 '이' '기' '심' '성' 등의 어휘와 관계 지을 수 있는 부분은 예외라 할 정도로 드물다. 그런데 사서를 공부하는 사람은 우연히 등장하는 그 말에만 집중하고 정작 유가 사상의 본령이라 할 '인(仁)'과 '애민(愛民)'의 실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공자와 맹자가 입이 닳도록 말한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는 관심 밖이란 말이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아주 전도된 것이다. 이상이 홍길주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다.
오늘날도 쇠털처럼 갈린 주장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리학이란 좀 대범하게 말해 '이' '기' '심' '성'이란 네 마디 말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관계를 달리 설정하기에 문제가 복잡해졌다. 원래 구체적인 지시 대상이 없는 말이니,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도 알아듣기 어렵다. 또 얼마나 주장이 쇠털처럼 갈라졌으면 정약용이 집집마다 문 앞에 깃발을 세우고 보루를 쌓는다고 했을까. 이쯤 되면 성리학은 이미 공자, 맹자가 말한 유학의 본래 정신에서 삼만 팔천 리나 떨어진 것이 되고 만다.
홍석주가 보았던 19세기 성리학은 유교의 정신을 배반한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그 본말 전도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매일 흘러간 시대의 한문 책이나 파고 있는 내가 어찌 알겠는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충분히 아실 터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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