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시화전은 시인보다 더 오랜 문학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같은 시대를 보낸 시인들도 그러했으리라. 고등학교 문예반 때부터 시화전은 즐거운 유혹이었다. 책 한 권 출판하기가 어려웠던, 백석의 시구처럼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했던 시절, 켄트지에 시를 쓰고 미술반 친구들이 그림을 그려주는 시화를 액자에 넣어 전시했다.
액자라고 해도 유리가 없는 싸구려 패널이 고작이었다. 시화전은 시인과 화가를 꿈꾸던 어린 예술가들의 축제였다. 그 어설픈 작품을 오래 읽어주고 방명록에 칭찬의 감상평까지 남겨주고 간, 그리하여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그 시절 관람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진해문협 회원이 되어서는 벚꽃이 피던 군항제 기간에 제대로 된 시화전을 할 수 있었다. 베레모를 쓴 진짜 화가들의 그림, 예술적인 서체로 쓴 시, 고급 액자에 담긴 시화가 흑백다방에 매년 걸렸다. 그것이, 그때 진해 문협 회원들의 유일한 작품 지면이기도 했다. 요즘 대학 축제 시화전은 시화가 아닌 시·사진전으로 진화했다.
시와 사진을 디지털로 합성제작, 깔끔하게 출력한 작품들이 액자가 아닌 투명 비닐로 코팅을 해서 전시된다. 잡지처럼 편집된 멋진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나의 옛 시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한 점이라도 걸려 있을까. 오래된 옛 친구처럼 만나보고 싶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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