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자식을 잃은 80대 노부(老父)가 30년째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장학금을 희사해 오고 있다. 주인공은 조선대 토목학과 명예교수인 임병대(84)씨.
아들 균수(당시 21세) 씨는 원광대 한의대 본과 2학년에 다니다 1980년 5월 21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을 만나려고 광주에 왔다가 각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지자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균수 씨는 당시 조선대에 다니던 둘째 형(양수씨)과 함께 금남로에 나왔고 계엄군의 총소리에 놀라 달아났다.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형과 헤어진 균수 씨는 계엄군의 총에 머리를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양수씨는 동생이 숨진 다음날 계엄군에게 붙잡혀 40일 넘게 고문을 당했다.
임 교수는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으나 1970년 장남을 병으로 잃은 후 10년 만에 막내 아들마저 가슴에 묻어야 했다. 임 교수는 막내 아들의 꿈을 대신 실현하기 위해 이듬해 아들이 다녔던 순창북중고와 광주 인성고에 50만원의 장학금을 내 놓았고 월급과 연금 등을 쪼개 장학금을 낸 것이 올해로 벌써 30년이 됐다. 그리고 아들의 추모비가 세워진 원광대 한의대에는 89년부터 해마다 100만원의 ‘무등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또 90년 아들의 목숨과 바꾼 7,000만원의 정부 보상금이 나오자 사재를 보태 상가 한 채를 구입했고 매달 나오는 임대료를 장학금에 보태고 있다. 임 교수는 “내가 죽은 뒤에도 장학금은 계속 지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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