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 쨍쨍 날카로운 창(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곧게 뻗은 대나무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댓잎이 그려진 그림 한 폭은 마치 병장기 창고 같다.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묵죽화가 일주 김진우(1883~1950)의 ‘묵죽’에서 우리 옛 조상의 일제를 향한 저항의식이 오롯이 느껴진다.
봄과 가을, 일년에 두 번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해로 전시 80회를 맞아 ‘사군자대전(四君子大展)’을 연다. 미술관 소장품 중 임진왜란 이후 그려진 사군자 108점을 선별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사군자를 주제로 한 전시는 1976년 ‘사군자전’과 2005년 ‘난죽대전’에 이어 세 번째.
한국회화사상 최고의 묵죽화가로 꼽히는 탄은 이정(1554~1626)에서부터 수운 유덕장(1675~1756) 표암 강세황(1713~1791) 현재 심사정(1707~1769) 추사 김정희(1786~1856) 우봉 조희룡(1789~1866) 운미 민영익(1860~1914)에 이어 지난해 작고한 단안 옥봉(1913~2010)의 작품까지 두루두루 살필 수 있는 자리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하는 작품은 탄은의 시화첩 에 있던 5폭의 난죽매화(蘭竹梅畵)다. 검은 비단에 금가루로 대나무와 매화, 난을 그린 것으로 탄은의 탄탄한 필력과 탁월한 화면구성 등 그의 기량이 절정을 이룬 작품.
유덕장의 대나무도 훌륭하다. 유덕장의 ‘설죽’은 한겨울 눈 쌓인 초록의 대나무를 그린 것으로 노대가의 모든 역량이 집약된 절품(絶品).
바위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려 수척하고 가냘프지만 기품 있는 추사의 난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영향을 받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묵란’도 추사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간결하고 소박한 추사의 난에 비해 이하응의 난은 농묵과 필치를 조절해 좀더 기교를 부린 듯한 느낌이 든다.
더불어 조선후기 세도정치가 민영익의 ‘석죽’과‘묵란’은 중국 망명 당시 화풍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던 흔적이 엿보이고, 이정, 유덕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평가받는 신위(1769~1847)의 ‘신죽’은 날카롭고 강인한 기세가 충만하다.
산수화와 풍속화를 주로 그렸던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매화 ‘백매’도 문인화 못지않은 기품이 흐른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유교문화권에서는 일찍부터 문사들이 매난국죽을 사군자로 일컫고 시화의 소재로 삼아 군자기상을 드러내왔다”며 “그림에 깃든 선비의 꼿꼿한 절개와 기개를 살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시는 29일까지, 관람료는 무료. (02)762-0442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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