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월 중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입성하자 "강 회장의 숙원인 메가뱅크 구상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파다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강 회장 간에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래도 시장의 예상은 "정권 말에 그런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것. 하지만 2개월 뒤인 17일, 정부는 메가뱅크 구상의 첫 단계로 보이는 우리금융지주 매각 방안을 발표했다.
#2. 작년 11월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시비가 남아 있었지만, 설마 당국이 시장자율로 이뤄진 인수ㆍ합병(M&A)을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12일 정부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무기한 보류했다. *관련기사 3면
은행권 재편이 시장을 역주행하고 있다. 정부는 시장에서 이뤄진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은 덮어버리면서도, 정작 시장에서 "순리에 역행한다"고 지적하는 메가뱅크 출범은 강하게 밀어 붙이는 모습이다. 정부가 은행권 지각을 무리하게 뒤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우리금융지주에 대한 재매각 절차 착수를 공식 의결했다. 지주사 전체를 일괄 매각하되, 최소 30% 이상 지분을 인수하도록 입찰자격을 제한했다. 18일 매각공고를 낸 뒤 9월 쯤 매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민상기 공적자금관리위원장은 "특정 후보를 언급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산은금융지주의 인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은금융측은 우리금융 인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반면, KB 신한 등 다른 금융지주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어서 사실상 산은 단독질주 형국이다. 금융지주사가 다른 금융지주사를 인수할 경우 지분 95% 이상을 사야 한다는 현행 규정을 정부가 굳이 완화하려는 것 역시 "메가뱅크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장에선 과연 올바른 민영화인가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산은 측은 "둘 간의 합병 후 정부 지분은 자연스레 5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금융 쪽에선 "완전 민영화까지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산은 휘하에 우리은행까지 들어간다면 대형 정부은행이 탄생하는 꼴"이라며 "시장 원리와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할 공산이 크고 위험도 한 곳에 쏠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계 인사는 "설령 합치더라도 덩치가 크고 일부는 민영화되어 있는 우리금융이 산은금융을 인수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사들이기로 한 M&A 계약은 정부승인이 기약 없이 늦춰졌다.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인데, 현재로선 계약 자체가 무산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하나금융은 곤경에 처했지만, 론스타는 중간배당 등으로 얼마든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잃을 게 없다"는 평가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은행권 새 판 짜기를 강행한다면 향후 엄청난 부작용과 함께 국내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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