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쿠데타 50년] 초등생·경찰관까지 데모… 나라 구하려 군인 나선 것경제 발전·근대화는 공로, 장기집권·인권 탄압 과오
이만섭(79ㆍ사진) 전 국회의장은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5ㆍ16쿠데타에 대해 "불가피한 군사혁명이었다"고 규정했다. 이 전 의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극도로 혼란한 무정부 상태였다"면서 이같이 말한 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서로 공과를 인정하고 화합해야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5∙16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그는 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취재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가까워졌고, 1963년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진출했으나 나중에 '3선 개헌'과 '유신 개헌'을 반대하기도 했다.
-5ㆍ16을 어떻게 보는가.
"불가피했다. 당시 장면 정부는 너무 무능해 무정부 상태와 같았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당시 겪은 경험을 얘기하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당시 기자였던 나는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민주당 신ㆍ구파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국민학생(초등학생)과 경찰관까지 데모하는 지경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혁명이 일어나면 총리가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당시 장면 총리는 그렇지 않았다. 주한미국 대사관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는 수녀원에 숨어 버렸다. 그런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 수 있었겠는가."
-5ㆍ16은 쿠데타인가 혁명인가.
"불가피한 군사혁명이었다. 나중에 박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추진하고 장기 집권을 하면서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내가 보기에는 군사혁명이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들이 나선 것이다."
-5ㆍ16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경제를 살리고 민족의 가능성을 찾는 계기가 됐다.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줬다. 박 전 대통령은 민족 의식을 내세웠고 자립경제, 자주국방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독일에 간호사 등을 보내서 차관을 가져 왔고, 한일회담으로 경부고속도로와 종합제철, 비료공장 등을 만들면서 나라를 살렸다."
-과오보다 공로가 더 많다는 의미인가.
"수학 공식처럼 얘기할 수는 없다. 5∙16은 경제 지위를 향상시키고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장기집권과 인권 탄압, 강경 정치는 잘못된 것이다."
-5ㆍ16을 어떻게 재평가해야 하는가. 그리고 5ㆍ16이 남긴 그림자의 극복 방안은.
"승계와 단절이 필요하다. 경제를 건설하고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킨 점 등은 승계해야 한다. 하지만 장기집권에 따른 인권탄압 등은 단절해야 한다.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의 경제 건설 등을 인정하고, 산업화 세력도 민주화 세력이 억울하게 탄압받은 것 등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잘한 것은 인정하고 잘못은 반성하면서 화합해서 선진국을 만들어야 한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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