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선임장관직 사임… 장남 리센룽 총리에 국정 맡겨
싱가포르의 국부(國父)이자 초대 총리를 지낸 리콴유(李光耀ㆍ87ㆍ사진) 선임장관이 14일 전격 사임했다. 장남 리센룽(李顯龍ㆍ59)이 2004년 8월 총리에 오른 뒤 선임장관직을 맡아 사실상의 수렴청정을 해 오던 그가 돌연 국정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 싱가포르 정치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 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리 선임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새로운 정치 상황이 도래했다"며 선임장관직을 내 놓는다고 밝혔다. 그는 "젊은 세대가 어렵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싱가포르를 이끌고 나갈 시기가 됐다"며 "총선 결과를 검토한 끝에 사임을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AP통신도 이날 리센룽 총리가 조만간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리 전 총리의 사임은 싱가포르에서 총선이 실시 된 지 1주일 만에 나온 것이다. 50년 이상 집권해 온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은 7일 총선에서 전체 의석 87석 중 81석을 차지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야당이 사상 최대 의석인 6석을 확보한 것은 여당에겐 큰 충격을 줬다. 싱가포르에선 그 동안 야당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야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은 1991년 총선 당시 4석이 고작이다. 1960년대 400달러대에 불과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4만3,000달러까지 치솟을 정도로 경제 성장이 이어지며 야당 목소리가 전혀 먹히지 않은 것.
그러나 젊은 층 사이엔 '권력 세습'과 '정치 후진국이라는 오명'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고, 이러한 불만이 인터넷 유세가 가능해진 이번 선거에서 그대로 표출됐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싱가포르 주택 가격이 2006년 이후 70% 이상 상승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리 선임장관의 사임은 이러한 민심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리 선임장관은 19세기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 부호 집안 출신으로 영국 캠브리지대 법대를 수석졸업한 뒤 1950년 귀국, 54년 PAP를 창단했다. 이후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59년 초대 총리에 올라 90년까지 싱가포르 경제의 고성장을 이끌었다. 이후 고촉동(吳作棟ㆍ 70) 전 총리가 그 자리를 물려 받았고, 2005년에는 리 초대총리의 아들인 리센룽이 총리가 됐다. 리 초대 총리는 아들이 총리에 오르면 은퇴할 것이라는 추측을 일축하고 그 동안 선임장관으로 내각의 실질적 권력을 행사해 왔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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