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반응은 대체로 "미국 참 대단한 나라다"였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10년이나 추적한 끝에, 결국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으니. 테러리스트를 정의의 심판대로 데려오든, 정의를 그 앞으로 가져가든, 끝까지 찾아내 처단한다는 놀라운 집념이었다.
미국은 물론 환호했다. 백악관 앞으로, 그라운드 제로로 몰려나와 한밤중 "USA"를 연호하며 승리감에 도취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끝났다"고 호언했다. 악당은 처치되고 미국은 승리한 것일까?
성전(지하드)의 타깃을 미국으로 정조준한 것이 빈 라덴이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미국을 주적으로 삼은 빈 라덴은 9·11테러라는 무시무시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였고, 분산된 알 카에다 지부와 연계조직을 공조시키는 조직가였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멤버였던 글렌 칼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빈 라덴 없는 알 카에다는 여왕벌 없는 벌집이라고 썼다. 조직원들은 이상을 꿈꾸며 분노하기만 하는 삶으로, 방향을 잃고 해당 지역의 문제에 천착하는 젊은이들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테러대상에서 지워지리라는 것이다.
반면 많은 이들이 빈 라덴은 없어도 테러는 여전할 것이라고 보는데, 영국 싱크탱크기관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라훌 로이초더리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빈 라덴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자생적 테러집단들은 나름대로 성전의 이념을 갖고 있고 알 카에다와 독립적으로 테러를 자행하고 있어 빈 라덴 사망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는 라쉬바르 에 타이바(LeT),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하카니 같은 무장집단이 그러한 예이다.
사실 위 두 가지 전망은 상반돼 보이지만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빈 라덴 없는 세상'에서 테러는 뿌리 뽑힌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중동과 남아시아로 전가되는 것뿐이라는 해석이다. 냉전이 끝난 이후 종교ㆍ문화적 분쟁과 국지전이 지구적 문제라는 사실에는 달라진 게 없다. 좁은 의미에서 미국은 승리했더라도 테러는 패배하지 않았다.
미국 에드먼드버크연구소의 제프리 쿠너 소장은 "서방이 직면한 위협은 단지 빈 라덴과 수천 명의 테러분자가 아니라 인류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이슬람세계의 혼돈과 격변"이라고 주장해 왔다. 과거 지리적 발견 시대에 걷잡을 수 없었던 유럽문명의 기세처럼 세계로 분출하는 이슬람문명의 에너지가 충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폭력과 테러는 이슬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결국 서로 다른 문명을 어떻게 용인하고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지금 인류에게 던져진 화두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전쟁까지 일으켰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조차 지난주 처음으로 빈 라덴 사살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슬람문화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살특공대에 합류한다"고 그는 말했다. 수천 명을 희생시켜야 미국의 정책이 바뀔 것이라고 일기장에 쓴 빈 라덴의 인식이 희망 없는 이슬람 젊은이들에게 뿌리 박혀 있다면, 미국은 아직 이긴 것이 없다. 더 많이 타격을 줘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알 카에다보다 더 어려운 북한을 상대하는 우리에게도 무엇을 승리의 목표로 삼을 것인지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김희원 국제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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