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62cm에 몸무게 53kg. 출발선에 선 그를 보면 안쓰러움이 앞선다. 180cm가 넘는 큰 키와 긴 다리를 이용해 트랙을 휘저으며 질주하는 거구들 틈새를 비집고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짧은 다리지만 롱 스트라이드(long strideㆍ보폭을 최대한 벌리는 것)주법으로 거구들을 젖히는 장면에선 짜릿한 꽤감마저 든다.
세계 주니어 육상 중장거리부문을 휩쓸었던 오거스틴 키프로노(24ㆍ케냐)다.
키프로노가 시니어대회 평정, 첫 무대로 8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겨냥하고 있다.
케냐 빈농 출신의 키프로노는 일찌감치 육상에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14세 때인 2003년 동아프리카 유소년 선수권대회에서 800, 1,500, 3,000m 3관왕에 오르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키프로노는 같은 해 열린 세계 유소년 선수권에서 3,000m 금메달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니어 무대를 제패하는데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세계 주니어선수권 5,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키프로노는 이처럼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밥 먹듯이 차지했지만 감동을 안겨주지 못했다. 기록경신에 ‘2%’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3,000m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며 신기록에 대한 갈증을 깨끗이 풀었다. 당시 키프로노가 뛰어넘은 선수는 현재 5,000m와 1만m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중장거리 황제’ 케네니사 베켈레(29ㆍ에티오피아)다.
키프로노는 2004년, 2005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그랑프리 파이널에선 3,000m와 5,000m에서 모두 3위로 밀려났지만 2006년 영 연방국가들의 스포츠제전인 커먼웰스대회 5,000m에서 대회신기록(12분56초41)을 세우며 1위로 골인하면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3,000m와 5,000m에서 모두 꼭지점을 찍었다고 판단한 키프로노는 이 대회를 계기로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섰다. 1,500m 도전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9위, 이듬해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선 5위에 그치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세계선수권 직전에 열린 대회에서 찍은 3분29초47는 그 해 랭킹1위를 기록할 정도로 페이스는 여전했다. 키프로노는 2010 IAAF 상하이 다이아몬드리그에서 1위로 골인(3분30초22)하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악몽을 씻어 냈다.
한편 키프로노와 메달 색깔을 다툴 것으로 보이는 호적수는 실라스 키플라갓(22ㆍ케냐)이유력하다. 키플라갓의 최고기록은 3분29초27로 역대 톱 10에 해당한다. 앞선 랭커들이 거의 10년 전 묵은 기록의 주인공들이라서 키플라갓이 실질적인 1인자인 셈이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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