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기
오늘도
온종일
까치 산비둘기와 함께
콩밭에서 살았습니다
늘 고만한 키
생전에 입던 잠바
색 바랜 운동모를 쓰고
먼발치에서 보면
누구라도
신씨 노인이 이 땡볕에 또 밭에서 일하네
라고 중얼대며 오갔을 겁니다
화투놀이 끝에 격조했던 읍내 사는 친구 한 분은
버스를 타고 마을 회관 앞을 지나다
비탈밭에 수그리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지켜보다
끝내
말을
걸고
말았
답니
다
● 식전 고추말뚝 박는 소리에 개가 짖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겨우내 뭉친 근육 풀고 한해를 같이 시작하자고 농부가 밭에 고추말뚝 침을 줄지어 꽂고 있습니다. ‘소리 나는 침은 처음 보네. 흙은 본래 과묵한데, 침엔 약한 것인가, 엄살인가.’ 떠오르는 객쩍은 말을 거두고 길 아래 논 쪽을 바라다봅니다. 무논에 바지를 둘둘 걷고 정강이로 물밀며 들어가다가, 내년에도 다시 논에 들어올 수 있을까 생각하는지, 백로처럼 멈춰서며 허리 펴던 늙은 농부의 가는 다리 생각납니다.
시의 행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해 허수아비 하나를 만들었네요. 죽은 신씨 노인의 의상이 생전 신씨가 일하던 밭을 지키네요. 친구 한 분은, 보고 싶은 맘이 앞서서인가요, 눈이 침침해서인가요, 아니면 생전의 의상만으로도 신씨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그리웠었나요, 끝내 허수아비에게 말을 걸기도 했었군요. 시 속 풍경이 쓸쓸하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하네요. 마치 이런 작별인사가 비탈밭에 울려 퍼질 듯 하네요.
이보게, 이제 좀 땡볕은 피하고, 쉬어가며 쉬엄쉬엄 일하게, 죽어서도 농사짓는 이 친구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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