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酒醉) 감경(減輕)'이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처벌을 줄여 준다는 의미다. 형법은 심신미약자(心神微弱者)의 경우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0조 2항). 의학적 개념이 아니라 법률상 관념이므로 법관이 알아서 판단하는 것인데, 심신미약의 한 형태로 '주취'를 비교적 넓게 인정하고 있다. "술 취했으니 그럴 수 있겠지"하는 관대함(?)과 술 취해 '필름이 끊겨버린 경험'에 대한 공감대(?) 등이 원인일 수 있겠다. 기쁨보다 슬픔과 괴로움이 음주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오죽하면 그랬을까"하는 동정심까지 갖는 사회다.
■ 공공장소에서의 만취한 행태를 우리나라는 범죄로 여기지 않는다. 경범죄처벌법에서조차 '술'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없다. 공공질서와 사회안녕을 위해 54가지 행태를 금지하고 있는데 유독 '주취'에 대한 항목은 없다. 거칠게 겁을 주는 말이나 행동, 큰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 정도가 '주취자'를 제어할 수 있는 근거다. 또 담배꽁초 쓰레기 등을 함부로 버린 행위를 단속하는데 '등'의 의미에 새벽 길거리에 널려 있는 '음주토사물'을 적용할 수 있겠다. '타인이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음주보행'조차 범죄로 취급하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 어린 여학생 납치살해범이 "이틀 전부터 술을 마셨고 주취 상태로 자다가 깨어보니 옆에 그 학생이 숨진 채 누워 있더라"고 법정에서 주장했다. 앞서 비슷한 범인은 실제로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질렀음이 인정되어 형량이 줄었고, 국민들의 분노가 높았다. 두 사건 사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아동성범죄의 경우 주취 상태를 감경 요소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했다. 아동성범죄에만 한정하고 있어 다른 범죄에선 여전히 '술김에 한 행동'은 형을 줄여주게 돼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강력범죄 가운데 40% 정도가 '주취자'의 소행이었다.
■ 최근 서울경찰청 인권위원회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의 적극적인 총기 사용 발언이 화제에 올랐다. 주취자의 파출소 난동 사건 때문이었는데 그 상황에 한정해 조 청장의 발언에 동조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 정도의 주취자에게까지 인권의 잣대를 엄하게 들이대야 하는지 의문도 제기됐다. 물론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라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엄히 적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주취자의 행동을 심신미약에 의한 감경 사유로 할 게 아니다. 술 취해서 한 행동에 대해 오히려 더 큰 책임을 묻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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