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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립자연박물관 건립으로 국격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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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립자연박물관 건립으로 국격 높여야

입력
2011.05.1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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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용산에 국립자연박물관을 세운다고 발표한 것은 벌써 20년 전이다. 그러나 당시 문화부는 쉽사리 예산을 얻지 못하자 학계에서 건의문을 채택해 예산 배정을 촉구했다. 그이후 1995년 '문민정부'는 이 박물관의 건립을 발표하고 3년간 6억여 원을 투자해 각종 기획 연구 보고서를 냈다. 전국적인 부지 공모에 44개 지방자치단체가 응모하고 14개 지역이 후보지로 선정돼 마치 전국이 벌집을 헤쳐 놓은 듯 들떠 있었다. 그러나 다음에 집권한 '국민의 정부'는 이 사업에 경제성이 없다며 중단했다. 문화적 가치를 경제적 잣대로 재단하는 몽매함을 들어낸 것이다.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가 발사 28년 만에 태양계 끝에 도달했고 작년엔 일본의 우주선 하야부사호가 7년간 우주탐험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런 소식은 자못 경탄스러우면서도 우리의 마음 한켠을 착잡하게 만든다. 당장의 경제적 대가를 얻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기초적인 장기 연구에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왜일까? 과학과 산업 혁명의 수순을 밟은 서구와 달리 우리는 뒤늦게 근대과학의 성과를 직수입해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기초적인 경쟁력이 취약하기 그지없다. 최근 정부가 기초와 창의력에 기반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닫고 기초과학벨트 등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날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전은 사실상 세포생물학을 기초로 하고 이것은 17세기의 로버트 후크의 세포 발견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것도 렌즈의 제작이라는 기술개발로 가능했는데 그 바탕엔 '굴절론'을 쓴 데카르트, 천체관측용 렌즈를 처음 만든 갈릴레이 그리고 빛의 파동이론을 낸 호이겐스가 있었다. 즉 기초연구와 기술이 얽혀가며 큰 과학적 발견을 낳은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자연에 대한 기초연구와 국민 대중의 과학화에는 자연박물관과 과학관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자연박물관만 1,000 개가 넘는 미국과 적어도 200~300개나 되는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우리는 영세한 사립박물관 몇 개가 고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 최하위이고 전 세계를 통틀어도 하위권에 있다. 미국 국립자연박물관은 몇 해 전 연 관람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과학은 고급문화에 속했다. 그러나 오늘의 과학은 대중문화가 되었으며 자연박물관과 과학기술관, 동ㆍ식물원 등이 그 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DNA와 원자력, 판구조론이 오늘날엔 일반시민의 교양과 상식이 된 것이다.

과학과 자연 그리고 예술 역시 서로 동떨어진 게 아니다. 화가 반 고흐는 자연 사랑이 예술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 길이며 화가들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자연연구와 과학기술이 문화와 국력을 선도하고 있는 오늘날 정부는 국립자연박물관 건립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현재 인천, 경기, 충남 세종시 등이 국립자연박물관 유치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접근성 등 입지조건을 엄정 심사해 뒤늦게나마 명품 국립자연박물관을 세우기 바란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병국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국립자연박물관 건립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정 장관은 국민의 자연사랑 그리고 문화적 자존을 위해서도 국립자연박물관 건립을 더 이상 끌지 말고 추진하기 바란다.

이병훈 한국자연박물관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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