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5월을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모란의 달이며 밝고 맑고 순결한 달'이라 노래했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은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특별히 가정의 달로 제정된 적은 없지만,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겸 가정의 날, 16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기념일이 모여 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가정의 달로 불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만, 가족을 떠나 보낸 이들은 대신 추모공원을 찾는다.
얼마 전 추모공원을 찾은 한 방문객이 있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70대 어르신이 자신의 장지를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이다. 아직 전통적인 매장법을 선호하는 지방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연이 궁금했다. 어르신은 살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앞으로 자손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다녀갈 수 있게 서울 근교를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마지막 가는 길마저 자식의 안위를 제일 먼저 생각하는 부모 마음인가 싶어 괜스레 가슴 한 켠이 뭉클했다.
최근 3, 4년 전부터 화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통계 자료도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지난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인식 조사에서도 국민 10명 중 8명이 죽으면 화장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장묘문화의 급격한 변화는 부모세대의 의식 변화에서 가장 크게 기인한다. 예전 문중 단위의 넓은 가족관계가 점차 해체되면서 묘소 관리의 주체도 점차 한 가족단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직계 자녀들의 거주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 사후 관리가 용이한 대도시 인근의 납골시설이 주목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굳이 산림훼손 등의 환경문제를 거론하지 않고도 조상의 묘와 우리가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더 깊이 고민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묏자리 마저 자식이 편한 곳에, 가까이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일 터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노부모가 생존해 있는 동안 얼마나 함께하고 있을까? 일이 바쁘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명절에나 겨우 부모를 찾아 뵙는 형편이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효행실천연구회가 펴낸 자료에서 흥미로운 계산법이 있다. 앞으로 부모와 함께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보는 셈법이다. 자료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경우, 1년에 부모와 만나는 시간이 추석과 설, 즉 명절이 끼어있는 6일 정도밖에 없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지 묻고 있었다. 6일이라 해 봐야 하루 24시간 중 부모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11시간이다. 만약 부모가 앞으로 20년을 산다고 하면 남아 있는 시간은 1,320시간이다. 일수로 따자면 겨우 55일이다. 겨우 그 정도 밖에 안되느냐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추모공원에서 일하다 보니 "살아 생전 부모님을 자주 뵙지 못한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이별은 찾아온다. 부모가 떠난 후 뒤늦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다면 우선 이것부터 해보자.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에게 안부 전화 한번 제대로 못 했다면 집을 나서 부모님을 찾아 뵙는 건 어떨까.
이규만 분당메모리얼파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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