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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장경제 망치는 '지네발' 경영

입력
2011.05.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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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도입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 말 폐지됐다. 대기업의 무차별적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한 의도였으나,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이 기술과 품질 향상 노력 없이 보호막에 안주했고, 이를 틈탄 외국제품의 수입 확대로 국내시장이 잠식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후 4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야생에 던져진 중소기업들의 생존능력은 커졌을까. 보호막을 걷어낸 결과는 참혹했다. 시장은 즉시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했다. 대기업들은 주력사업과 무관하게 중소기업들이 하던 자판기 운영을 비롯해 자동차 정비, 광고 대행, 빵집 체인, 인테리어, 골프연습장, 콜택시, 막걸리ㆍ두부 제조 등 업종을 불문하고 뛰어들었다.

떡볶이 등 서민업종까지 싹쓸이

SK 롯데 CJ 등은 생수 사업에 진출했고, LG전자는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 SK 등 많은 재벌그룹이 문방구류 같은 소모성 자재를 공급하는 계열사 운영에 나섰다. 이들이 문방구 시장에서 가격을 후려치는 바람에 중소 문방구 제조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도시락, 떡볶이, 학원 등 서민형 업종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부 재벌가는 2세, 3세, 심지어 4세까지 빵집이나 광고대행사 등 비상장 계열사를 차려 주식을 독점하게 한 뒤 다른 계열사들의 물량 지원을 통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문어발 확장을 부의 변칙 상속과 증여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전직 삼성맨이 쓴 이라는 책은 재벌의 탐욕에 대해 '문어발'보다는 '지네발' 사업확장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어발은 몸집만 키우지만, 지네발은 중소기업의 싹을 완전히 잘라버리는 독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 들어 중소기업은 시들시들 말라가는 반면, 재벌의 몸집은 고도비만 환자처럼 비대해졌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 55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계열사는 2009년 1,137개에서 올해 1,554개로 417개나 늘어났다. 특히 10대 재벌그룹 계열사는 최근 3년 새 212개(52.2%)나 급증했다. 몸집만 커진 게 아니다. 수익의 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분기 상장회사 3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6.8%나 치솟았다.

대기업의 자본력에 밀려 중소기업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생산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산업생산지수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지수 격차가 2004년 1.4%에서 2009년 6.9%로 크게 벌어졌다. 그만큼 경제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침투에 대한 사업조정신청 건수가 2007~2008년 27건에서 2009~2010년 8월 말 245건으로 9배나 치솟았다.

지금 시장은 지네발의 독성에 신음하고 있다. 재벌의 시장지배력 남용과 담합 등 불공정행위가 도를 넘어섰다. 대기업 계열사가 중소기업으로 위장해 중소기업 공공구매시장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에 매달려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방기해왔다. 뒤늦게 상생 구호를 들고나왔지만, 구체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불균형 성장의 고리를 끊어야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단체 등의 신청을 받아 7월까지 실태조사를 벌인 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에야말로 지네발 경영으로 망가진 시장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재벌들이 미래 먹거리를 위해 신규 사업에 진출하거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계열사 늘리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중소기업 영역이나 생계형 업종까지 넘보지 말고, 덩치에 걸맞게 주력업종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라는 말이다.

동반성장은 재벌 총수들 불러 협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불공정행위를 일삼으며 대기업 곳간만 채우는 지네발을 잘라내야 한다. '시장 친화'라는 이름으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 심화를 방치해온 불균형 성장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동반성장도 가능하다. 대기업 배만 불리는 성장으론 시장경제를 지켜내지 못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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