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정준호 지음/후마니타스 발행·320쪽·1만3,500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적어도 한 종류 이상의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기생충들에는 기생충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이 또 있다. 기생충은 독특하고 희귀한 생물이 아니라 지구 생명 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보편적인 생물이다. 지구와 생명체들은 기생충으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젊은 기생충학도인 정준호씨가 쓴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는 기생충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생물들이 서로 기생하거나 공생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다른 생물에 얹혀살며 온갖 전염병의 원흉이 되는 기생충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보기 힘든 존재지만 이런 편견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게 한다. 기생충>
기생충이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한 방법의 기발함과 다양함이다. 이는 때로 SF영화나 소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숙주조종이다. 기생충은 중간숙주를 조종, 그 다음 숙주에 잡아먹히게 함으로써 자신은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숙주로 정확히 옮겨 간다. 또 숙주가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면역방식을 개발해 내고 기생충은 이에 맞서 새로운 감염 방법을 개발해 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생충은 생명체 진화에 원동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단지 기생충의 세계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생충과 인간, 기생충과 사회의 상호작용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실제로 기생충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기 위해 직접 아프리카로 건너가 기생충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저자는 "처음 단순히 기생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던 공부는 소외 열대 질환으로 이어졌고, 이는 제3세계와 빈곤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옮겨갔다"며 "기생충과의 만남으로 세상을 보는 나의 눈도 달라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책은 이른바 기생충학의 황혼으로 불리는 시대에 아직도 기생충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기생충이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함으로써 기생충과 기생충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사정원 기자 sjw@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