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과학/쉘라 재너서프 지음
법은 과학을 규제하려 들고, 과학에게 법이란 때로 속박이다.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발병 사태, 나아가 천안함 사건까지 둘은 대립 양상은 완강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길항 관계는 곧 문명 발달사인지도 모른다. 1995년 미국의 과학기술학자 쉘라 재서너프는 과학적 진리와 사법적 정의는 공존할 수 있다며 그의 독특한 ‘과학과 협치론’을 통해 역설한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에서 이 같은 문제를 두고 벌어진 다양한 사례와 판례가 인상적이다. 일례로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지만 뇌사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인공호흡 조치를 받아야만 했던 21세 여성이 법적으로 인공호흡기 제거 처분을 받을 때까지의 힘겨웠던 과정은 법 문화와 과학 문화 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그러나 의료 과실, 환경 소송 등 구체적 사례 속에서 법과 과학은 동지와 적 사이를 오가며 보다 나은 패러다임 구축을 모색해 오고 있다.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 유전학적 특성인지 사회학적 특성인지, 중요한 과학적 의사 결정을 두고 일반 대중이 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 규정이 왜 필요한지 등의 문제를 논의할 때 책의 논의는 대단히 실제적이다. 미국 사례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한계와, 하버드 대학 등 세계 로스쿨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적극적 평가가 공존하는 책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동아시아ㆍ396쪽ㆍ1만5,000원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이찬근 지음
금융 전문가들조차도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큰 금융 밑그림을 그리거나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주저한다. 복잡하고 고도로 분화한 데다 금융 분야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각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이념과 정책의 충돌도 계속돼 제도와 상품의 혁신도 계속돼 왔다. 금융 전반을 이해하기란 어렵고 또 어렵다.
이 책은 현실 문제나 역사적 에피소드에서 시작해 이론과 제도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금융의 탄생에서 현재 세계 금융 지형까지를 담았다. 일반인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하도록 어려운 수학공식이나 그래프를 최소화하고 담론을 평이하게 풀어 썼다. 하나의 금융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학문 체계를 결합해 설명하는 통섭 구성을 취해 금융시장 상품 기관 규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론으로 구성된 금융경제학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게 돋보인다. 채권 가격과 이자율이 반대로 움직이는 이유부터 초대형 금융 위기 서브프라임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등 경제 상황 전반의 궁금증도 상세히 설명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부키ㆍ528쪽ㆍ2만원
모든 것의 가격/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사람들은 대부분 물건을 살 때만 가격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가격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상품과 노동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 결혼, 신앙, 행복, 미래에까지도 가격이 붙는다. 생명의 값어치는 헤아릴 수 없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 생명에도 가격이 있다. 9ㆍ11테러 당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숨진 사람들에게는 희생자 1인당 25만달러, 부양가족 1인당 추가로 10만달러가 책정됐다. 최근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결혼의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양육에 필요한 비용이 높아지면 아이를 덜 낳는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종교적인 이유는 여성이 노동을 통해 버는 수입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에 종교에 투자해도 손해를 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격의 메카니즘과 역할, 가격이 발휘하는 힘, 인간이 가격을 통제하지 못했을 경우 얼마나 큰 손실을 입게 되는지 등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가격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물질적이고 삭막한 것이 아닐까. 손민중 등 옮김. 김영사ㆍ364쪽ㆍ1만4,000원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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