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화책은 반란 중이다. 황선미씨의 <마당을 나온 암탉> (2000년 사계절 발행)과 <나쁜 어린이 표> (1999년 웅진싱크빅 발행)이 12일 각각 100만부를 돌파했고, 고 권정생씨의 그림책 <강이지똥> (1996년 길벗어린이 발행)도 지난달 100만부를 넘겼다. 이 책들은 외국에서도 인기 몰이 중이고, 황씨 동화책의 경우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있어 불황의 그늘이 깊어진 출판계에 한 줄기 빛으로 여겨지고 있다. 보통 동화책이 소설에 비해 많이 팔리긴 하지만 100만부를 넘는 것은 주로 소설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엄청난 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동화책이 이처럼 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이지똥> 나쁜> 마당을>
출판계와 작가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어린이 공감 소재라는 점을 인기 비결로 꼽고 있다. 황씨는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라는 게 많이 팔리는 이유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나쁜 어린이 표> 는 담임교사로부터 나쁜 어린이라는 표를 받고 화가 난 초등학생의 이야기다. 모든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고, 실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 은 꿈과 자유를 찾아 양계장을 탈출한 암탉과 청둥오리의 용감한 도전 이야기다. 누구나 어릴 때 한번씩 해 본 행동이다. 황씨는 “물론 작가가 숨긴 그 많은 장치와 의미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겠느냐고 어른들이 의심하지만 아이들은 제 눈높이에서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명필름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올 여름 국내에서 개봉할 예정이며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중국에서도 1,000여개 스크린에 걸린다. 마당을> 나쁜>
<강아지똥> 도 마찬가지다. 버림받은 존재인 강아지똥이 민들레의 거름으로 스며들어 생명을 꽃피운다는 내용으로 극한 고통 속에서 더욱 빛나는 꿈과 희망을 그린 작품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똥을 소재로 한 점이 돋보인다. 권씨가 신장 수술을 받고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쓴 점도 인기 요소였다. 독신인 권씨는 4년 전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언장에서 자신의 출판에 대한 저작권 및 인세 등을 좋은 일에 써 달라고 최완택 목사 등에게 맡겼다. 이들은 권씨의 뜻에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을 만들어 북한 결핵환자 돕기와 우유 보내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아지똥>
재단의 안상학 사무처장은 “어린이의 보편적 감수성에 맞닿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라며 “고인이 죽어서도 별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어 했던 절실한 마음도 인기의 한 요인”고 평가했다.
또 다른 이유는 동화책을 선택하게 되는 부모들의 밑바닥 정서를 잘 포착했다는 사실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두 사람 모두 낮은 곳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의지적 모습을 보여 줬는데 이런 정서가 부모 세대에게 잘 먹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화책을 포함한 어린이책은 최근 해외에도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가 지난 2년간 출판 저작권 수출 실적(2,904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책이 62%(1,793건)로 가장 많았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남다른 교육열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콘텐츠가 해외에서도 받아들여질 만큼 경쟁력이 확보됐다”고 말했다.
사정원 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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