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학생회관 앞. 갓 고등학생 티를 벗은 앳된 얼굴의 교육학과 신입생 7명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입학 후 처음 맞는 학교 축제에 남자친구라도 초대했나 싶었지만 오늘의 데이트 상대는 교수님이다.
겨자색의 화사한 재킷을 입고 등장한 교육학과 이재경(48) 교수는 "7명에게 '찍힘'을 당해서 너무 영광"이라며 "평소보다 옷차림에 신경을 쓴 만큼 멋진 애인이 돼주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날 데이트는 학생들의 진로상담에 집중됐다. 한지윤(20)씨가 "재수를 해서 다른 동기들보다 뒤쳐졌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고 어렵게 고민을 털어놓자 이 교수는 "어차피 인생은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거니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의 내면을 단련시켜나가라"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이성문제도 거침없이 해결했다. "남자친구가 없어 걱정"이라는 학생들의 하소연에 "사실 나도 5년 전에 결혼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1시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특별한 데이트에 매우 만족해하는 눈치. 고아름(19)씨는 "대학에 들어와서 갑자기 생긴 자유를 어떻게 만끽해야 하나 좀 걱정됐는데 공부 계획까지 짜주는 애인이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스승의날을 맞아 마련된 사제간 데이트는 2006년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은 평소 만나보고 싶었던 교수를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는데, 일단 신청을 받은 교수는 어떤 이유로라도 거절할 수 없다.
최성희 학생복지팀장은 "매일같이 강의실에서 얼굴을 마주하지만 사제간 친해질 기회는 막상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 멘토링 데이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은 37명의 교수와 170여명의 학생이 참여해 사제간의 정을 나눴다.
교수들도 데이트를 기대하긴 마찬가지. 심재웅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데이트 신청숫자가 인기의 척도가 되다 보니 교수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경쟁한다"며 "연구년을 맞은 교수가 1명의 학생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고 너무 고마워하며 학교에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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