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 신드롬'이 또다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좌절시켰다. 국민은행과 HBSC에 이어 하나금융까지 세 번씩이나 '사법부의 판단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에 대한 결론을 미룬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빠른 결론을 내리겠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결국 판단을 미뤄진 것은, 공무원들의 몸 사리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계에선 또다시 금융위 판단이 미뤄짐에 따라, 대외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정부" "외국인투자자에 입구만 열어 놓고 출구는 닫아 놓는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법률 검토 의견 크게 엇갈려
사실 지난 3월 초까지만 해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은 거의 성사되는 듯 보였다. 금융위는 8년 동안 미뤘던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정기적격성) 심사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심사를 내부적으로 마치고 3월 16일 열리는 금융위에서 이를 의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며칠 앞두고 대법원이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고등법원에 돌려보내면서 돌발변수가 등장했다. 최종심에서 론스타의 유죄가 확정되면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상실된다. 결국 16일 금융위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해 "정기적격성은 문제 없으나 수시적격성(유죄판결에 따른 대주주자격 유지여부)은 법률 검토를 거쳐 결론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법률 검토 결과는 크게 엇갈렸다.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유죄이므로 론스타코리아도 자동으로 유죄가 되는 '양벌규정'에 대한 판단도 "위헌"이라는 의견과 "일반 직원이 아닌 대표의 경우는 합헌"는 의견이 엇갈렸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최종 판결 전에 금융위가 재량권을 발휘해 결론을 내리는 데 대해 소극적인 의견이 많아 문제가 됐다.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있다면 당국은 주식처분명령 등 권한침해적 조치까지 내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는 것.
금융위 내 논리 싸움
이때부터 금융위 내 논리 싸움이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론스타가 부적격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지분을 강제 매각 시키자"는 의견도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매각을 시키더라도 어떤 가격에 팔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닌 만큼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 경우 역시 사법부의 최종 판결 전에 유죄라는 결론을 내리는 셈이어서 혹시라도 무죄라는 판결이 날 경우 혼란이 예상됐다.
론스타의 적격성과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법률적으로 별개의 사안이므로 적격성 판단은 차후로 미루고 외환은행 인수만 승인해도 된다는 의견도 제기됐으나, 이는 2008년 론스타가 HSBC와 매각 계약을 맺었을 당시 금융위가 두 사안을 연계해 판단했던 전례를 뒤집는 행위라는 반론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현재는 고등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으므로 론스타를 무죄로 추정하고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되 나중에 판결이 확정되면 그때 론스타의 적격성을 다시 판단하는 식으로 조건부로 적격성을 인정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이 역시 사법부 판단 전에 '적격'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것이어서 문제가 됐다. 결국 사법부 판단 전에 금융위가 결론을 내렸다가 나중에 책임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후유증 클 듯
금융권에선 이미 몇 주전부터 "금융위 실무진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심지어 론스타건에 대해 결론을 내려는 김석동 위원장과,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실무라인간의 '불화설'까지 나돌곤 했다.
실무선에선 '특혜'우려를 가장 걱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법부 판단도 기다리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것, 무엇보다 그런 결정으로 혜택을 받는 하나금융지주 CEO가 이명박대통령의 친구인 김승유 회장이란 점을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다음 정권가면 결국 감사원 감사에 청문회까지 열릴지 모르는데 왜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나"란 인식이 실무선에 팽배했다는 후문이다. 전형적인 '변양호 신드롬'인 셈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3월 초 하나금융의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에 대해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8년을 끌어온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또다시 몸을 사렸다는 점에 대해 금융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은행권의 한 고위인사는 "지난해 우리금융 매각무산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골치 아픈 이슈는 어느 누구도 손대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론스타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대외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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