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우리 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광일진데 그 풍경이 품은 땅의 비밀에 대해선 왜 알려고 하지 않는가. 공부도 원리를 아는 게 우선이라지 않나. 그 땅의 비밀을 듣고 다시 보게 되면 풍경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강원 고성의 송지호에 그 동안 소개되지 않은 비경이 있다길래 발길을 향했다. 그 비경을 안내한 이는 강원도 DMZ 지리조성사업단의 김창환 단장이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비경을 유네스코 지오파크에 등재해 그 진가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모임의 대표다.
단장이 먼저 데리고 간 곳은 송지호해수욕장이다. 그리 넓지 않은 백사장이지만 모래는 눈부시게 하얗다. 발바닥에서 모래 비벼지는 소리가 유난히 거세다. 김 단장은 ‘우는 모래’라서 그렇단다. 모래에 석영이 많이 섞여 나는 소리다.
백사장 남쪽의 철조망을 물쪽으로 해서 돌아 들어섰다. 군사보호구역이었다가 1년 전 개방된 구간이다. 바닷물에 닳고 닳은 둥근 갯바위들이 펼쳐졌다. 무턱대고 바위를 넘어 가려는 기자를 김 단장이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바닥의 둥근 홈들을 가리켰다. 일부러 구슬 던지기나 동전 던지기를 위해 뚫어놓은 듯한 구멍 20여 개가 한데 모여있다. ‘마린 포트홀’이란다. 작은 돌멩이가 구멍 안에 들어가 파도의 물살에 따라 돌며 만들어낸 것이다. 강물에 의한 포트홀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바닷물에 의한 포트홀은 희귀하단다. 김 단장은 “제주의 산방산 자락 용머리해안에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한다. 동해안에서 이런 포트홀은 매우 드물다”고 했다.
이 마린 포트홀이 왜 생겼을까. 다른 갯바위와 달리 포트홀이 있는 부분은 평평하다. 물이 가만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 이런 포트홀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구멍 안에 해초가 뿌리를 내리면 화학적 풍화까지 이뤄져 더 깊게 파여진다.
마린 포트홀 군락을 지나 좁은 갯바위 틈을 통과해 들어갔다. 금강산에선 금강문을 열고 들어가야 금강의 진경이 펼쳐지듯, 갯바위 좁은 틈 너머엔 눈이 휘둥그레질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이 서낭바위라 부른다는 바위다. 8자형 혹은 눈사람처럼 생긴 바위다. 치마처럼 자락을 늘어뜨린 삼각뿔 모양 바위 위에 얇은 허리가 있고 그 위로 둥그런 바위가 올라섰다. 둥근 바위 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흙도 없는 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곧게 자라지 못하고 가로로 길게 누웠다. 황무지의 바람이 깎아놓은 바위 조각장인 미국 유타의 아치스캐년에 온 듯한 느낌이다. 동네 주민들도 그 모양이 기묘해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으리라.
김 단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 암석은 1억3,000만년 전에 만들어졌다. 눈사람 모양의 바위를 토어(tor)라고 한다. 땅 속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바위다. 마그마가 굳어 화강암층이 만들어졌다. 그 화강암층 위에 있던 다른 지층이 풍화작용으로 얇아지면,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약해짐에 따라 화강암층이 팽창을 하게 된다. 화강암층 표면이 바둑판 모양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압력과 팽창의 원리는 정치나 자연 현상이나 별 다르지 않나 보다. 그 갈라진 틈에 물이 스며들며 풍화작용이 더 활발해지고, 공기 중에 노출된 뒤로는 사각형 바위가 둥그런 알처럼 깎여나간다. 수많은 세월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설악산 흔들바위가 대표적인 토어다. 그런데 왜 이곳엔 눈사람 바위가 하나뿐일까. 김 단장은 주변 바닥에 널린 둥근 바위들이 그 토어들이 서있다 떨어진 것들이라고 했다. 바람과 파도에 더는 서있지 못하고 굴러 떨어진 것이다.
서낭바위의 허리부분이 특이하다. 이곳 서낭바위가 있는 갯바위 군락엔 화강암 바위 중간에 노란색의 띠가 죽 이어져 있다. 규암층이다. 마그마가 굳어 화강암이 생기는 와중에 석영 성분들만 집중적으로 뭉쳐진 게 규암이고, 이 규암이 이곳에서 띠를 형성했다. 이렇게 도드라지고 길게 이어진 규암층 또한 보기 드문 현상이다.
서낭바위의 허리띠도 규암층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 허리띠에 시멘트를 덕지덕지 칠해놓았다. 혹 바위가 굴러 떨어질까 봐 미리 보수라도 해놓은 걸까. 의심의 눈초리는 그 동안 서낭바위를 철책으로 가두고 있던 군인들에게 향했다. 만일 그랬다면 이 얼마나 무식한 일인가. 그러면서도, 그나마 군사보호구역으로 통제됐으니 마린 포트홀도, 서낭바위도 더 무식한 관광객이나 관리자들에 의한 더 큰 훼손을 피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파도나 바람보다도, 수천만 년의 시간보다도 더 무서운 게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이다.
서낭바위를 보고 다시 마린 포트홀 앞에 섰다. 바로 앞에는 죽도란 섬이 떠있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섬엔 대나무와 소나무들이 빼곡했다. 꼭 찾아가 닿고 싶은 섬이지만 죽도는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다.
죽도를 향한 열망이 강해서일까. 가 닿고 싶은 마음만큼 송지호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 죽도로 뻗고 있다. 모래사장이 섬과 마침내 닿게 된다면 육계사주와 육계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해수욕장 뒤편의 송지호는 석호다. 바다에 잠겨있던 들판이 융기로 올라왔다가 그 골짜기 입구에 모래 등이 퇴적돼 호수가 된 곳이다. 이름처럼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겨울엔 고니가 머물다 가는 곳이다.
고성=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화산이 둘러싼 북방식 가옥구조의 집성촌…고성 왕곡마을을 아십니까
송지호 뒤편엔 아름다운 전통마을이 있다. 기와집과 초가가 어우러진 오봉리 왕곡마을이다. 14세기 무렵부터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마을을 반으로 뚝 잘라 윗마을엔 함씨가, 아랫마을엔 최씨가 주로 터를 잡고 산다.
오봉리란 지역명은 마을을 둘러싼 다섯 봉우리에서 이름한다. 오음산, 두백산, 공모산, 순방산, 제공산 등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마을에서 이들 봉우리를 쳐다보면 산세가 보통 강원도의 그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들 산은 화산이다. 삼각뿔 모양으로 봉긋 솟은 게 제주의 오름과 닮았다. 실제 이들 봉우리는 제주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화산들이다. 금강산의 바다 위 절경, 총석정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산들이다.
다섯 봉우리가 에워싼 덕에 한국전쟁 때도 대부분의 집들은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북 안동의 하회, 경주의 양동마을 등과 다른 점은 종택이 중심이 된 마을이 아니란 점이다. 너른 들판에서 나온 풍요로움이나 오랜 양반가의 내력으로 지켜온 전통마을이 아니다. 입향조 자체도 조선의 건국을 반대해 은거하기 위해 심심산골의 이곳을 찾아 들었다고 한다. 번듯한 외관의 고대광실 집들은 없지만 일단 마을 안에 들어서면 과거로의 여행에 빠진듯한 느낌이 든다.
마을의 집들은 관북지역의 집구조를 하고 있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한 특유의 북방식 구조다. 일자형 아니면 같은 구조에 외양간이 더 붙어있는 ㄱ자형이다. 방문이 밖으로 나있지 않는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부뚜막이 있고, 그 부뚜막 옆으로 대청이 깔렸고 방이 연결된다. 외양간도 부뚜막 바로 옆이다. 한겨울 워낙 춥다 보니 부뚜막서 만든 음식을 바로 마루나 방으로 가져가고, 소여물도 바로 옆에서 건네주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다. 곡식을 쌓아둔 뒤주도 마루 한쪽에 만들어져 있다. 대문이나 담장이 없는 앞마당은 개방적인 반면 뒷마당은 높은 담으로 둘러 쌓았고, 부엌을 통해서만 출입하도록 폐쇄적인 것도 특이한 가옥 구조다.
집집 굴뚝마다 항아리가 엎어져 있다. 바닥을 뚫은 항아리를 얹어놓은 것이다. 굴뚝을 통해 나온 불똥이 초가에 옮겨 붙지 않도록 하고, 열기를 한 번 더 집 내부로 들여 보내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50가구 정도의 주민들은 인근 들판에서 논농사나 밭농사를 짓고, 송지호에서 재첩을 잡아 수익을 얻는다.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개천이 정겹다. 물도 맑고 푸른 풀로 가득 차있다.
여덟 가구가 일반 민박체험 공간으로 운영된다. 기와집은 5만원, 초가는 4만원. 성수기에는 2배를 받는다. 고성왕곡마을 (033)680-3364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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