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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빨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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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빨리빨리

입력
2011.05.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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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중국어 공부를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중국어 선생이 내게 '빨리 빨리'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한국인 학생들이 툭하면 하는 말이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표정이 제법 진지했는데 무슨 긴요한 질문을 하는 듯했다. 어학 코스에 다니던 한국인 학생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이었고 드물게 10대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빨리빨리'라고 말해놓고는 와하하 웃는데, 그게 때로 욕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차마 대놓고 묻지는 못하고 나이 많은 학생이었던 나를 찾아와 돌려 물었던 듯하다.

젊은 세대도 기다릴 줄 몰라

그 질문을 받고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은 그 애들뿐만 아니라 한국사람들 누구나 가장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라고 대답해줬던 기억이 난다. 애들이 그 말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던 정황을 짐작하기는 했지만 설명해줄 수는 없었다.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모든 게 다 느려터졌다. 무슨 서류 하나 떼고, 무슨 수속 하나 밟기 위해서 온갖 절차를 거쳐야 하고, 답답해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말하자면 복장이 터질 것 같을 지경인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빨리빨리'라고 말해놓고 웃음을 터뜨렸던 것은 일종의 야유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야유에 그다지 악의가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놀라운 마음은 있었다. 빨리빨리 외치는 게 가혹한 경제개발에 등 떠밀려 살아온 우리 윗세대나 우리 세대까지의 일일 뿐인 거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 시절의 에피소드이다. 허구한 날 짓는 듯 마는 듯 하는 건물을 보고 저 건축기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중국인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1년이 걸린댔던가, 2년이 걸린댔던가. 지인의 말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콧방귀를 뀌듯이 대꾸한 말은 정확히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선 그 반의 반도 안 걸려요, 라고 내가 그랬었다.

건물뿐인가. 쇼핑센터에서 물건 하나를 사고 계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천 원짜리 사고 백 원 거슬러 받는데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지폐를 한 장 한 장 세서 물건값과 거스름돈을 맞추는 그들이다. 그때마다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당장 급한 일도 없으면서 그렇다.

외국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차가 안 다니는 건널목에서 신호등 바뀌는 것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고, 사람 안 다니는 건널목에서 차를 정지선에 맞춰놓고 서 있는 것도 너무 힘들다. 이럴 때는 융통성이란 게 중요하다. 현명한 판단과 적당한 융통성은 교통 체증을 완화시킨다고 나는 배웠다. 교통체증뿐만 아니라 모든 체증에 대해서 그렇다. 물론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라, 살아왔던 삶에서 배운 것이고 또 살아가는 삶에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무단횡단과 신호위반으로 아낀 1분은, 전국민적으로 따져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내게 보상되는 시간은 아무리 계산해봐도 1분이지만 그것의 총합인 어마어마한 시간은 내가 잃어버리는 시간이다. '빨리빨리'에 떠밀려 돌아보지 못한 시간들, 누리지 못한 순간들,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미래, 그런 정서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상실한 것들

때로는 다리도 무너지고, 건물도 무너진다. 하루 아침에 경제가 무너지기도 한다. 내가 낭비한 1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빼앗겨버린 1분의 문제이겠다. 기다리지 못하게 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을 자랑스러워하게 하고, 그것만이 전부라고 여기게 한 세월과 사회의 문제이겠다.

4대강 개발 도중 사람들이 툭하면 죽어나간다고 한다. '빨리빨리' 하느라고 그렇다는 것인데, 그렇게 빨리 해서 이룰 개발효과가 얼마나 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것이겠다. 사람 목숨 몇쯤은 아무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혹도 별 것 아니고, 온 국민이 가져야 할 공감대도 별 것 아닐 만큼, 그렇게 대단해야겠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이 잃어버리는 1분은 단지 1분이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상실과 분노로 남겠지만 말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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