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귀찮은 것 빼버리지…. 충치만 생기고 어금니를 괴롭히는…. 씹으며 지그시 참을 수 있겠어…. 지그시 간직할 수 있겠어…." 13일 저녁(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중심지 포츠담 광장에 자리 잡은 주독 한국문화원에서 그룹 동물원의 노래 '사랑니'가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무대 위에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의 김광규(70) 시인이 서 있었다. 노(老)시인이 '영산' '동서남북' '나뭇잎 하나' '오뉴월' 등 자신의 시 7편을 우리 말과 독일어로 낭송할 때 귀 기울이던 독일 청중들은 '사랑니'가 오디오로 흘러나오자 흥겹게 발장단을 맞췄다. '사랑니'는 김광규의 시에 동물원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 이날의 무대와 이어진 청중과의 대화 시간은 칠순의 한국 시인이 시를 통해 독일의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순간이었다.
노시인에게 이날 베를린 낭송회는 감회에 젖게 만드는 자리다. 올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시 낭독 여행을 시작한 지 만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한양대 독문학과 교수로 독일 문학을 한국에 가르치던 그는 "진정한 문화교류는 한 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시를 들고 독일어권 순회 시 낭독을 시작했다. 스무 해 동안 계속된 낭송회 등을 통해 그는 독일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국 문인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독일학술원은 2006년 그의 업적을 인정, 한국인에게는 처음으로 프리드리히 군돌프 문화상을 안겼고, 한ㆍ독협회는 2008년 제5회 이미륵상을 수여했다.
그의 시집은 이미 영어와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도 출판됐다. 두 번째 독역 시집 <녹색별 소식> 출간을 계기로 이뤄진 지난해 낭송회 때엔 독일 공영방송과 최대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비롯한 독일어권 언론매체들이 그의 시와 문학세계를 크게 다뤘다. 올해의 낭독여행도 스위스 취리히 시 정부의 초청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 등으로 이뤄졌다. 녹색별>
베를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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