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과 강남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사제폭탄 폭발사건은 주식 파생상품으로 잃은 돈을 되찾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에서 비롯된 위험천만한 범죄였다. 그러나 공범을 모아 업무를 분담하고,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옵션만기일을 범행날짜로 잡는 등 범죄과정은 치밀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주범 김모(43ㆍ무직)씨는 주식, 더구나 일반인은 개념자체가 복잡해 잘 투자하지 않는 파생상품전문가가 아니었다. 잘만 투자하면 주식보다 수익이 더 크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수준. 특수강도 등 전과 8범인 김씨는 지난해 7월 교도소 출소 후 11월부터 지인들에게 3억300만원을 빌려 파생상품인 코스피200 풋옵션 종목에 투자했다가 4개월만인 올 3월 모두 잃고 빚 독촉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11일 선배로부터 빌린 5,000만원을 역시 주가가 떨어지면 이득을 얻는 풋옵션에 투자했다.
김씨는 "공공시설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하면 주가가 어느 정도 떨어져 많은 이득을 볼 것으로 기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 당일 코스피200지수는 전날에 비해 6.28포인트 하락하는데 그쳤다. 삼성증권 김성봉 투자전략팀장은 "오전부터 프로그램매물이 쏟아져 주가가 떨어졌지만 폭발사건의 영향이라기보다 미국 증시 하락이 주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김씨가 이날 주가하락으로 얼마를 벌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이상정 형사과장은 "김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테러 위협이 많은 상황에서 '흉내나 내보자'는 차원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폭발물 제조지식이 없는 김씨가 폭발물을 만든 과정은 더욱 가관이다. 김씨는 지난달 인터넷에서 '사제폭탄 제조법' 등으로 검색해 방법을 익혔다고 밝혔다. 재료도 공범 이모(36)씨를 통해 손쉽게 구했다. 경찰이 폭발물 제조법을 알려준 사이트나 인터넷카페에 대해 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한다지만 마땅한 처벌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김씨는 특히 폭발물 제조는 자신이 하고, 재료구입은 이씨에게, 설치는 박모(51)씨에게 맡겼다. 김씨는 박씨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사건 전날 남대문시장에서 산 보라색 등산복 상하의와 모자 등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공범 이씨와 박씨는 각각 "김씨가 폭발물 제조에 사용할 줄 몰랐다" "가방의 내용물이 연막탄의 일종으로 알았고 돈을 준다 길래 심부름만 했을 뿐이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폐쇄회로TV 영상과 폭발물 잔해물을 토대로 수사를 하던 중 이씨가 범행에 사용된 국산 디지털 타이머를 경기 파주시의 한 제조회사에서 직접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고 추적해, 14일 이씨를 붙잡았다. 이씨의 통신내역 등을 살핀 끝에 같은 날 오후 김씨와 박씨도 체포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 파생상품이란, 투기적 성격 강해… 한국 2년 연속 세계 1위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사제폭탄 폭발 사건이 파생상품에 투자한 개인이 옵션만기일 주식시장 혼란을 노려 대박을 꿈꾼 범행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개인들의 파생상품 투자 실태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폭발물을 제조한 주범 김모(43)씨가 투자한 파생상품은 주가지수옵션 상품인 코스피200 풋옵션. 풋옵션은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지난해 11월 한국도이치증권이 현물 시장에서의 대량 매도로 주가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풋옵션'을 사들여 400억원이 넘는 거액의 부당 이득을 챙기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파생상품은 당초 주가, 통화, 채권 등 자산가격 급변에 따른 투자 손실을 줄이기 위한 위험 회피 목적으로 1996년 국내에 상륙했다. 해마다 거래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지난해 37억5,200만계약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 2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다양한 파생상품 가운데 개인들의 참여가 높고 투기적 성격이 강한 주가지수옵션 시장만 비대해진 상황.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김씨가 투자한 주가지수옵션인 코스피200옵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95%로 압도적이다. 이러다 보니 국내 파생상품 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33%를 넘을 정도로 개인들의 투기성 투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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