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이 저축은행 검사 업무를 담당하다 퇴직한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에게 매달 300만원씩 월급형태로 금품을 제공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금감원 전ㆍ현직 간부들이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수조원대 부실을 눈감아주며 수년간 맺어온 유착관계가 하나 둘 베일을 벗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는 15일 김민영 부산·부산2 저축은행장 등 은행 임원들이 금감원 비은행검사국장을 지낸 유모(61)씨에게 2007년 6월 퇴직 이후 월 300만원씩 최근까지 총 2억1,000만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유씨는 매달 김 행장이 서울로 올라와 직접 건네준 돈을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에 입금했다가 아파트 대출금 이자 등을 갚는 데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씨가 저축은행 검사를 총괄하는 비은행검사국장으로 있던 2003년 7월 부산저축은행의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특별감사를 할 때부터 부산저축은행측에 편의를 봐준 것으로 보고 있다. 유씨는 비은행검사국장을 물러난 뒤에도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은행이 금감원 검사를 받을 때마다 검사반원 구성이나 검사결과 처리에 영향을 미치는 등 여러 차례 검사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구속된 유씨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행장을 업무관계로 알게 된 뒤 같은 불자로서 형님·동생하며 지내던 사이라 품위유지비 명목으로 김 행장 개인 돈을 받은 것일 뿐 검사와 관련해 청탁을 받거나 금감원 후배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대가성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월급'까지 주면서 퇴직한 금감원 간부를 관리했다면, 현직 직원을 상대로 한 로비는 더 광범위하고 조직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광주지검 특수부가 수사하는 보해저축은행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저축은행은 금감원 직원을 매수하기 위해 금품은 물론 그랜저 승용차까지 상납하고 금감원 직원은 저축은행에 수십억원대 보험가입을 요구하는 등 유착의 골이 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 사이 각종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되거나 수사대상에 오른 전ㆍ현직 직원만 13명에 달하는 등 금감원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유씨를 포함해 현재까지 대검 중수부가 밝혀낸 금감원 유착 비리는 2009년 부산저축은행 검사반장을 맡을 당시 이 은행의 특수목적법인(SPC) 대출비리 보고를 받고도 묵인한 금감원 수석검사역 이모씨와 2005~2007년 부산저축은행그룹 검사를 담당했던 금감원 수석조사역 최모씨의 금품수수 혐의 등 세 건이다.
부산저축은행그룹보다 덩치가 적은 보해저축은행에서 이미 금감원 전ㆍ현직 직원 3명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사법처리된 것에 비춰보면 중수부의 로비 수사는 이제 시작단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1일 기소된 금감원 출신의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 은행 감사 4명이 로비 창구로 지목된 만큼 로비 수사가 본격화하면 사법처리 대상자는 더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검찰 주변에선 조사역, 검사반장, 담당 국장까지 비리의 손길이 뻗친 것으로 드러난 만큼 다음 수사 대상은 그 윗선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재호 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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