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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맛 쇼' 김재환 감독 인터뷰/ "지상파 맛집 프로 고발은 미디어 권력과의 싸움 회사 문 닫을 각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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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맛 쇼' 김재환 감독 인터뷰/ "지상파 맛집 프로 고발은 미디어 권력과의 싸움 회사 문 닫을 각오도"

입력
2011.05.1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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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70분짜리 다큐멘터리 한 편에 방송가가 발칵 뒤집혔다. 지상파 TV 맛집 프로그램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트루맛쇼'다. MBC PD 출신인 김재환(42) 감독은 이 '쇼'를 위해 차린 가짜 식당이 협찬비를 건네고 TV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과정을 통해 방송사를 정점으로 한 외주제작과 협찬, 조작의 검은 고리를 고발한다.

늘 카메라를 들이대던 쪽이다 졸지에 '몰래 카메라'에 치부를 포착 당하고 만 방송사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극히 일부의 외주제작사 문제로 떠넘기거나, '함정 취재'를 문제 삼으며 소송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 감독은 오히려 "소송을 환영한다"고 했다. 승소 여부를 떠나 그 과정에서 방송사의 치부가 더 드러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란다. 외주제작에 기대 사는 독립프로덕션의 대표로서 회사 문 닫을 각오까지 하고 거대권력 방송사에 선전포고를 한 까닭은 무엇일까. 10일 김 감독의 사무실을 찾아 속내를 들어봤다.

-왜 만들고 누굴 겨냥했나.

"진실이라고 믿는 이미지, 그게 돈에 의해 기획되고 조작됐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뇌물을 주고받는 식당과 제작사 그리고 파워 블로거, 그들을 이어주는 홍보대행사와 브로커, 돈으로 업계를 교란시킨 프랜차이즈, 조작하는 PD와 작가, 싸구려 재미에 중독된 저렴한 취향의 시청자, 제작비를 줄이려 이 모든 부조리에 좌판을 깔아준 방송사 모두를 겨냥했다. 모두 공범이지만 가장 책임이 무거운 건 방송사다."

-조작방송을 만든 외주제작사 더 문제 아닌가.

"물론 문제다. 하지만 핵심은 방송사들이 제작비를 턱없이 부족하게 주면서 대신 외주업체가 협찬 받는 걸 눈감아주는 구조다. 심지어 저작권도 방송사가 다 가져간다. 제작사는 양심을 팔 것인가 생존을 포기할 것인가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있다. 거기서 협찬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조작을 택하는 거다."

-열악한 외주제작 환경이 조작 프로그램이 나오는 주원인이라는 건가.

"그렇다. 지상파 3사 중 그나마 양반인 게 MBC다. '찾아라! 맛있는 TV'는 제작비로 편당 3,300만원(연예인 출연료 제외)을 준다. 실제 들어가는 제작비의 80~90% 수준으로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시청률 경쟁을 시키기 위해 두 제작사에 격주로 맡겨 제작사에서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SBS '생방송 투데이'는 금융위기 이후 기존 제작비의 절반도 안 되는 몇백만원 대로 낮췄다고 들었다. 알아서 협찬 뛰라는 의미 아니겠나. 돈독이 오른 거다. KBS도 장수 프로그램 'VJ특공대'가 숱하게 협찬 받고 다닌다."

-맛집이 다 맛없는 집으로 몰릴 판이다. 제작사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애꿎은 제작사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방송사와 관계가 더 힘들어졌다고 얘기 들으면 마음 아프다. 하지만 좀 더 큰 그림을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2,3개월은 힘들 수 있지만 양심적으로 일하고 합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방송에 나온 맛집 중 진짜 맛집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된다는 항의도 있었다. 결국 맛은 속일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고객들이 알아본다.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경우 계속 양산될 선의의 피해자도 있다. 대박 식당이 쪽박 식당 돕는 내용으로 몇 년 전 방송된 프로그램은 정말 흡혈귀나 다름없다. 잘되는 식당이 아니라 프랜차이즈를 노린 신생업체까지 난립해 사기를 쳤던 거다. 방송 보고 그 식당 찾아가 가맹점 낸 사람은 어떻게 되겠나."

-정식 개봉도 전에 파장이 크다.

"전주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쇼'를 보고 난 후처럼 뭔가 머리를 때린 듯 멍했다고 하더라.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사실 착취와 증오의 관계였다. 그런데 영화가 알려진 이후 갑과 을이 뭉쳐 방송사는 '영화에 나온 사례만 그렇다'고 하고, 외주제작사는 '충분히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 나 때문에 대동단결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제작비 제대로 주고 거짓 방송 안 만드는 환경이 조성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새 음식 프로그램이 좀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맛있다고 호들갑 떠는 부분이 축소되는 식으로. 문제가 큰 협찬사들은 다 잠수 탔다."

-당신 회사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회사 문 닫을 수도 있다고 각오했다. 아직까지 (외주계약 해지 등) 압력은 없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MBC와의 거래가 70~80%였고 비교적 관계가 좋았다. 증오에 불타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방송이 국민을 속였다'는 메시지를 던질 정도의 정의감이 있을 뿐이다. 방송사와 싸워 이긴 케이스가 없는데, 내가 첫 사례를 남겨보겠다."

-몰래카牝窄?동원하는 등 함정 취재를 했는데.

"했다. SBS가 외주사 속이고 함정 취재했다며 소송을 검토한다는데,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MBC '불만제로' 같은 프로그램과 똑같이 한 거다. 소송 운운하기 전에 직접 상황을 조사해보라. 한 신문이 MBC CP가 '가짜 손님'은 촬영 편의상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면 조작을 인정한 것 아닌가."

-무모한 싸움이 될 수 있을 텐데.

"루비콘강을 건넜다. 맛집 하나 들고 나온 거 아니다. 방송사라는 거대 미디어권력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 번엔 의료 협찬 문제를 다룰 거다. 아침 프로그램에 숱한 아픈 사람과 명의가 나오는 비슷한 형식이 판치는지를. 상당부분 취재가 됐다.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뻔히 고통 받을 거 알면서 미친 짓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지상파를 겨냥한 게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들의 사주라는 설도 나도는데, 어이가 없다. 3년 전부터 기획하고 찍었는데 종편이 생길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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