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술을 마시면 짜증을 냈어요. 청소를 안 한다고 저와 둘째 동생을 때리기도 했어요. 막내도 배고파 울면 파리채로 맞았어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김병익 사업지원팀장이 한솔(7ㆍ가명)이네를 찾았을 때 아이의 얼굴에는 크고 작은 멍이 들어있었다. 바로 아래 5살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말할 때도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해 했다. 한솔이 엄마는 심지어 돌이 갓 지난 막내에게도 손찌검을 했다. 잘 먹지 못해 배가 불룩하게 부어있고 이 시기에 맞아야 할 예방접종도 안된 상태였다.
한솔이 엄마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2년이나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됐다고 한다. 이웃의 신고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더 고통스런 시간을 견뎌야 했을는지 모른다.
한솔이 경우처럼 학대 당하는 아동 열에 여덟은 부모가 가해자다. 특히 영아의 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11일 발표한 지난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 45곳의 신고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전체 아동학대 사례 5,657건 중 부모에 의한 학대는 83.2%다. 이 가운데 3세 미만의 영아를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는 9.4%(530건)다. 지난해 455건에서 16%나 증가했다. 매일 학대를 당하는 비율도 50.7%로 절반을 넘었다.
가해자는 놀랍게도 친부모가 가장 많았다. 그 중에서도 친엄마의 비율이 더 높았다. 친아빠가 34.2%, 친엄마가 55.4%로 나타났다. 김병익 팀장은 “영아 학대의 가해자 엄마가 많은 이유는 대부분 육아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알코올 중독이나 사회적인 고립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솔이 엄마도 마찬가지다. 한솔이 엄마가 아이들은 뒷전인 채로 술에 빠져 지낸 건 양육 부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들 아빠가 지방의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느라 혼자서 아이 셋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알코올 클리닉과 전문가 상담을 거친 뒤에야 잘못을 깨달은 한솔이 엄마는 “아이들이 이렇게 심하게 고통 받고 있는 줄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전문가들은 영아 학대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영아에게 학대를 하는 엄마들은 대부분 이를 학대라고 인지하지 못한다”며 “그러나 아이에게는 되돌릴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정서조절, 인지기능 등 대부분의 뇌 발달은 3세 이전에 이뤄진다”며 “이 시기에 받은 학대는 불안이나 우울증세를 넘어서 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어 아동학대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선 주위의 신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팀장은 “영아는 자기가 학대 받고 있다는 걸 표현하지 못할뿐더러 학령기 전이라 집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 발견되기 어렵다”며 “주위의 신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신고번호는 ‘1577-1391’이다.
보건복지부는 학대피해 아동의 치료보호시설을 늘리고 부모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교원, 의료인,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등에게 아동학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고를 의무화하고 학대자의 피해아동 접근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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