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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학교폭력] <3·끝> 헛발질 하는 교육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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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학교폭력] <3·끝> 헛발질 하는 교육당국

입력
2011.05.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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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시 위주 CCTV·학교보안관만으론 '폭력 사각' 못 잡는다

근육질의 청소년이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샌드백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상담교사가 다가가 이유를 물으니 "방금 급우와 말다툼을 하다 화가 치밀어 여기 와 삭히고 있다"며 "분노가 가라앉으면 그 친구를 만나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한다. 독일 북서부 도시 함(Hamm)의 실업학교 칼슐레의 명물 시설인 '학교스테이션'의 일상적 풍경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이 주로 다니며 전국에서 퇴학당한 학생들도 모여드는 학교지만, 학교폭력 예방 모범사례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학교스테이션은 이 학교를 유명하게 만든 상징적 시설로, 분노를 제어하기 쉽지 않은 학생들이 찾아와 여러 가지 운동기구를 이용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상주하는 상담교사와 대화를 나눈다. 샌드백이 터져라 주먹질을 하던 학생은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6년간 200~300회 이곳을 찾아 상담을 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지난 3월 방영된 EBS 기획 '세계의 교육현장'의 한 장면이다.

독일은 청소년 폭력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원칙으로 하지만 동시에 원인 해결을 위해 국가차원의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하임(Heimㆍ상주형 대안교육 치료시설)'의 경우 학교생활과 일상생활을 병행하도록 하면서 청소년 1인당 연간 우리 돈으로 8,000만~1억원 가량의 비용을 들여 평균 2년간 수용하며 정상적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집중 교육한다. 하임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범죄자가 돼 끼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 선진국의 학교폭력 등 청소년 비행 대책은 대부분 장기적이고 교육적 시각에서 접근한다.

독일 역시 인터넷 비방과 집단 따돌림 등 지능화한 학교폭력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독일 교육당국이 운영하는 학교폭력 관련 사이트(mobbing-in-schulen.de)를 보면 무형의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 피해학생 대처법이 안내돼 있다. 예를 들어 교사의 대처법으로 ▦피해학생과 상담하는 모습이 급우들에게 알려지면 다른 급우들은 나빠진 학급분위기를 그 피해학생 탓으로 여기게 된다 ▦단기간으로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마라 ▦'좀더 친구들에게 다가가라'고 피해학생에게 따돌림의 원인을 돌리지 마라 등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은 학교폭력 자신신고 기간 지정, 스쿨폴리스 운영 같이 단기적 감시 위주의 대책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시도 별도로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학교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학교보안관을 배치했으나, 이 역시 눈에 보이는 물리적 폭력을 일부 예방할 뿐, 지능화하는 학교폭력에는 속수무책이다. 국내 유일한 학교폭력 상담기관이라 할 수 있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산하 학교폭력SOS지원단의 경우 정부 지원예산이 올해 5억8,000만원에 불과해 제구실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유미 학교폭력SOS지원단장은 "우리사회의 학교폭력 대책은 보안카메라나 학교보안관처럼 감시 차원에 머물고 있으며 그나마 학교에만 집중돼 PC방이나 학원 주변처럼 학교 밖의 폭력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또 "SOS지원단도 상담 전문가는 16명에 불과해 폭력 발생시 출동해 중재에 머무는 정도이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폭력 청소년에 대한 재발방지 교육도 형식적 인성검사나 쓰레기 줍기 같은 사회봉사 명령에 그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단장은 "학교 내 자격을 갖춘 사회복지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등 상담ㆍ교육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 전문가 해법/ 신순갑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

교사 전문가 등이 나서 치유책을 고민해왔지만, 학교폭력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청소년정책위원회 전문위원, 경찰청 청소년비행대책위원 등을 역임한 신순갑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사무총장에게 해법을 물어봤다.

-학교폭력 가해 연령이 어려지고 있는 까닭은.

"막 가치관이 정립돼야 할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 더 많은 학생들이 폭력에 노출되고 있고, 교실 안에서 거리낌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현상이 시작돼도 이를 막지 못해 결국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폭력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사이버 폭력 등 수법이 교묘해져서 교사들이 경악할 정도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인터넷 매체 접근이 용이하고, 변화에 민감한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사이버폭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해 학생들은 문제의식이 없고 당하는 학생들은 모욕 분노 우울 보복충동 등에 시달리고 있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학생들이 늘어난다고 들었다.

"보통 10% 가량의 학생들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가정폭력, 기타 폭력 등을 이미 당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장기간 폭력에 노출돼 있다 보니, 누군가를 때리고 괴롭히는 행동이 자신을 방어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있거나, 일종의 놀이 수단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된 학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청예단에 상담을 의뢰하는 분들 중 약 10% 정도가 학교 선생님들이다. 정말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깊이 고민하다 전문기관에 도움을 청하는 선생님들인데, 막상 이 분들을 위한 학교 폭력 대응교육이 충분하지 못하고 의무화돼 있지 않다. 교사들이 충분히 학교폭력 예방교육 연수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학교에서 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흔히 옛 성교육처럼 영양가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금처럼 대규모로 강당에 모여 하는 예방교육은 당장 그만 두는 것이 낫다. 예산과 교과시간배정 등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담실 운영 방식도 재고해야 한다."

-학교폭력 사건이 터진 이후 처리 과정에도 문제가 많은데.

"학교는 사안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은폐하기 일쑤인데, 숨기기보다 전문기관 등의 자문을 받아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달라져야 한다. 또 고통을 겪는 아이들은 바로 외부 상담전문가, 폭력전문가 등에게 연계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하나의 프로세스가 잘 정착되는 것도 중요하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자살충동까지 경험한 高1독서·운동 집중 4년 만에 극복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나, 분하고 억울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픈 기억에 불과해요."

2일 서울 노원구 학교 앞에서 기자와 만난 K고 1학년 K(18)군은 "꼬박 4년이 걸리긴 했지만 집단 따돌림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했다"고 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스스로 자살충동까지 경험한 K군의 말은 무게가 달라 보였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5년부터 3년간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같은 반 학생 4,5명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소심하고 조용했던 K군을 끌고다니며 때렸다. 교사와 상담했지만 징계를 받은 뒤 가해학생들이 저녁마다 집 앞에 진을 쳤다. "또 학교에 알리면 죽이겠다"며 때려 K군은 2주간 병원에 입원했다. 가해학생들은 그 후 K군을 반 전체에서 왕따로 만들었다. 왕따 낙인은 중학교까지 따라왔다. 어머니의 권유로 인근 아동상담센터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다. 1년 넘게 상담했지만 이미 대인기피증, 우울증, 자해충동 등을 겪고 있던 K군은 결국 잦은 등교거부로 중2 과정 중 6개월 넘게 결석을 했다.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애써 상담소에는 꾸준히 갔는데,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며 "꾸준히 마음을 털어놓다 보니 상담 2년 만에 분노 억울함 수치심 같은 것이 조금씩 사라지는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이 안됐고 상처받은 아이들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깨 펴고 다니기 위해서' 태권도도 배웠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으며 충족감을 느끼려 애썼다. 다음해 유급생으로 학교에 돌아갔을 때, 눈에 띄게 의연해진 K군의 태도에 친구도 조금씩 늘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왕따, 유급생'이라는 비아냥은 운동에 집중하며 견뎠다.

어엿한 고교생이 된 그는 서울지역 고등학생 연합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시민단체 봉사활동도 한다. 꿈은 청소년 상담사다.

"대인기피증이요? 괜찮아졌으니 기자선생님 만나러 나온 거 아니겠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K군에게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또래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육체든 정신이든 내 것은 스스로 지킨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어른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의 끈을 붙들어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괴롭힘 당한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어요."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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