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지난 8일 오후 2시50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한강공원. 어버이날을 맞아 아빠와 운동하러 나온 정현민(13ㆍ용산중 1)군의 외마디 비명이 평화롭던 공원을 뒤흔들었다.
"저기 물에 사람이 빠졌어요!" 정군이 서둘러 가리킨 곳은 한강대교 아래 강 한복판. 30대 남성이 살려달라고 손을 연방 휘젓고 있었다. 낚시 나온 아저씨들, 산책을 즐기던 부부 등 공원엔 5~6명의 시민이 있었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정군의 아버지는 마침 자전거를 반납하러 가서 근처에 없었다.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정군의 눈에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황색 구명튜브가 단번에 들어왔다. 사력을 다해 뛰어 튜브를 가져왔지만 시간이 지체된 사이 힘이 빠진 남성은 둔치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상황. 혼자서 튜브를 던져봐도 남성에게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 어른들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자 정군은 지나가던 한 외국인 남성과 함께 튜브를 던졌고 4번의 시도 끝에 허우적대던 남성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촌한강순찰대가 도착한 건 정군이 남성을 구하고 4분이 지나서였다.
9일 서울 용산소방서 근처에서 만난 정군은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이 얼떨떨한 눈치였다.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려서 강 쪽을 봤더니 사람이 빠져있더라고요, 그냥 빨리 구해야겠단 생각 밖에 안 들었고 운 좋게도 마침 주황색 튜브가 제 눈에 띈 거죠." 키 157㎝ 몸무게 47㎏,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의 정군은 결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어른들이 하나같이 뒷짐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 혼자 뛰어다니며 사람을 구했다는 소식에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들은 기특해하면서도 씁쓸해했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물에 빠진 사람을 처음 본 것만으로도 많이 당황했을 텐데 같이 있던 어른들도 놀라서 어찌할 바 모르는 상황에 어린 학생이 대처를 참 잘했다"고 칭찬했다.
정군의 민첩한 대응으로 목숨을 구한 30대 남성은 다리 위에서 떨어질 때 난간에 몸을 부딪혀 등과 갈비뼈 쪽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온 이 남성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정군은 "친구들이 제가 체구가 작다고 놀릴 때마다 많이 속상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던) 아저씨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나중에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나쁜 맘을 먹어서는 안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소 정군을 무시하던 친구들의 태도도 달라졌다고 했다. "'정말 네가 구한 거 맞냐'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니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던데요. 앞으로 똑 같은 일이 벌어지면요? 더 빨리 구할 겁니다."
글ㆍ사진=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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