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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함보른 광산의 눈물

입력
2011.05.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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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2월10일 오전 10시40분 서독 함보른 광산.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하인리히 뤼브케 서독 대통령 내외가 차에서 내렸다. 이역만리로 돈을 벌려고 온 우리 광원들과 간호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박 대통령이 광원, 간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육영수 여사는 10m쯤 뒤떨어져서 간호사들 손을 잡고 일일이 말을 걸었다. 육 여사가 '일은 고달프지 않느냐'고 묻자 간호사들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육 여사가 세 번째 서있는 간호사에게 '고향이…'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그 간호사가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 간호사, 광원들도 울기 시작했다. 음악을 연주하던 광산 악대도 울었다. 뒤를 돌아보던 박 대통령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육 여사는 몸을 가누지 못해 간호사들이 부축했다. 독일인 광산 사장도 울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었다. 사진기자들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울었고 취재기자들도 울었다. 모두가 울었다."

함께 운 광원ㆍ간호사와 대통령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강당에 다들 모였다. 겨우 진정을 한 박 대통령 내외가 단상에 올랐다. 한국인 광원들로 구성된 악단이 애국가를 연주했다. 박 대통령의 선창으로 시작된 애국가는 이내 흐느낌으로 변했고 '대한사람, 대한으로'라는 후렴구에 이르러서는 합창은 통곡으로 변했다. 애국가가 끝난 후 박 대통령이 마음을 다잡고 연단에 다시 섰다. 박 대통령이 '감개가 무량하다' '얼마나 노고가 많으냐'는 내용의 원고를 읽어가자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원고를 덮었다. 그리고 모두가 울었다. 행사를 끝내고 귀로에 박 대통령은 차 속에서 계속 울었다. 뤼브케 대통령이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달래야 했다."

얼마 전 한국일보 주최 '클린리더스 클럽' 조찬 강연에서 이금룡 ㈜코글로 대표가 잠깐 언급한 함보른 광산 얘기가 아주 인상적이어서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본 내용이다. 47년 전 일을 새삼 꺼낸 이유는 요즘 정치권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지도자의 진정성 때문이다. 진정성이라…… 참된 마음, 진실한 마음과 정성을 의미하는 이 말은 일단 어감이 좋다. 그래서 모든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지도 모른다.

함보른 광산의 눈물은 의심할 여지없는 진정성의 극치였다. 헐벗고 굶주린 조국을 떠나 한 푼이라도 벌어서 고향의 가족에 보내려 했던 가련한 국민들을 만나 흘린 눈물은 진정성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15년 후인 79년 심복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저격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 것은 진정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72년 계엄령 속에서 헌법을 개정, 독재체제인 유신정권을 출범시키고 그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긴급조치로 탄압하면서, 그가 밝힌 "근대화를 매듭짓고 떠나겠다"는 이유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내년을 도모하는 대선주자들은 입만 열면 서민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점퍼를 입고 국밥집에서 설렁탕을 먹고 재래시장에 가서 어묵 파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는다. 그러나 국민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가난을 얘기하며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절차를 무시하고, 상생을 강조하면서 독과점의 횡포를 묵인하는 현실에서는 진정성은 공허한 말의 장난일 뿐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담아야 국민마음 산다

진정성은 카메라 앞의 설렁탕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실천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바로 정책이다. 함보른 광산의 눈물처럼 진실된 것이 아니라면, 재래시장의 이벤트는 그저 이벤트일 뿐이다. 진짜 서민에 도움이 되고 예산이 뒷받침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낸다면, 국민의 마음은 움직일지 모른다. 내년 대선의 승패는 어느 주자가 더 진정성 있는 정책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게 분당과 강원도가 야당 후보를 뽑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가 한나라당 후보를 택하는 요즘 민심이다.

이영성 편집국 부국장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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