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현실을 반영하는 객관식 5지 선다형 퀴즈 하나 내겠다. 자녀를 사교육의 현장에 던져놓은 학부모라면 간단히 풀겠지만, 탁상공론이 체질화한 교육 당국은 헷갈릴 것이다. "사교육이 적군입니까, 아군입니까?"①적군이다 ②아군이다 ③둘 다 아니다 ④둘 다 맞다 ⑤모르겠다.
정답은 ④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교육이 자녀의 성적을 올리거나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면 '보물'대접을 받고 있을 터이고, 반대라면 재산만 축낸 '원수'따위로 취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모했던 사교육 죽이기
사교육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다. 오죽하면 필요악이라고 하겠나. 3년 전 이명박 정부가 꺼내든 서슬 퍼랬던 교육개혁의 핵심이'사교육 때려잡기'였으나,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려가는 분위기다.
사실 사교육 대(大)청소에 쏟아 부은 교육부의 열정만큼은 높이 사야 한다. 추첨을 통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신입생 선발이나 학원 심야교습 금지 법제화 같은 검증 안 된'파생상품'도 겁없이 내놓을 정도였으니, 올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무모한 측면이 있었다는 게 아킬레스건이었다. MB 정부의 국정철학에 순치된 듯 실적을 내겠다는 욕심이 지나쳤는지 현장을 놓치는 우(愚)를 범했다.
아이러니하게 사교육의 숙주(宿主)는 교육부였다. 사교육을 잡겠다고 내놓은 교육정책들이 사교육을 되레 키운 것이다. 입학사정관제, 심야교습 금지 같은 사교육의 번식에 최적인 알짜배기 먹잇감을 몽땅 던져줬다.
외고 입시용 사교육은 철퇴를 맞았다고 여겨진다. 외고 때문에 강남에 빌딩을 몇 개나 사고 코스닥 상장 문턱까지 갔던 유명 학원들이 시쳇말로 맛이 갈 뻔했다. 교육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확실히 이기려면 이런 학원들을 퇴출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앞뒤 안 가린 입학사정관제의 전면 확대와 내신 강화 방안이라는 선물을 덜렁 쥐어줌으로써 재기의 기회를 주고 말았다. "내신만 좋으면 특목고 가고 명문 대학 간다"는 모토를 내건, 붕괴 직전의 학원들이 내신 전문 학원으로 발 빠르게 변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게 이 정부다.
심야교습만 잡으면 학생들이 학원을 외면하게 돼 공교육이 살아날 것이라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은, 한 나라의 교육정책 입안 부처의 판단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단견(短見)이었다. 개인 과외나 소그룹 과외, 주말ㆍ휴일반 교습 때문에 돈이 더 들어간다는 학부모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가.
자사고는 또 어떤가. 이런 실패작이 없다. 학생 선발권이 없는 고교에 어떻게 '자율'이란 단어를 갖다 붙일 수 있단 말인가. 교육과정도 일반고와 별 차이가 없고, 수업료는 3배 이상인 학교에 어느 학부모가 학생들을 맡기겠는가.
학원 과외비 규제가 해법
이쯤 되면 궤도 수정을 할 법도 한데 교육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잘못을 인정한 순간 여론의 집중 공격을 우려한 때문인가, 아니면 제도 보완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뭉개기 작전인가. 완벽한 정책이란 원래 있지도 않다. 상대성이 강한 교육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제2의 대치동'이라는 목동에 입학사정관 전형 준비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학원이 생길 판인데도 교육부는 전체 사교육비가 다소 줄었다는 통계 놀음에 고무돼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교육부가 사교육을 이기겠다고 덤빈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고 본다. 전략과 전술 모두 실패했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 사교육 수요를 정부 스스로 만들어놓고 승리를 바라는 것은 난센스다. 사교육비를 대느라 엄마가 술집에 나가고, 심지어 매춘에 가담하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묘안을 달라고? 있다. 부르는 게 값인 주요 학원가의 학원비와 과외비에 칼을 대라. 학원법을 고쳐서라도 학원비를 엄격히 규제해야 옳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학원법을 통과시켜라. 이게 장기적으로 사교육이 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교육부와 이주호 장관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김진각 편집위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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