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셔틀이란 ‘빵’에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수송비행선 이름인 ‘셔틀’이 합쳐진 신조어다. 중·고등학교에서 힘이 센 학생들로부터 빵을 사오라고 강요당하는 따위의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학생들을 의미한다. 빵셔틀에서 변형된 다른 신조어들도 있는데, 빵을 빼앗기면 ‘셔틀추락’, 심부름 속도가 빠르면 ‘속업셔틀’이라고 하며, 빵셔틀 외에 ‘돈셔틀’, ‘가방셔틀’, ‘숙제셔틀’, ‘안마셔틀’ 등도 있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을 반영하듯, 한때는 ‘빵셔틀연합회’라는 사이트까지 개설되었으나 이후에 문제가 되자 폐쇄되기도 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 동안 전국 64개 초·중·고교생 4,0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학교폭력을 경험했다는 학생 비율은 전체의 22%였고, 그 중 14%는 ‘셀 수 없을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또한 학교폭력을 경험한 학생 가운데 64%는 ‘학교 폭력으로 고통을 느꼈다’고 답했으며, 그 중 ‘죽고 싶을 만큼 고통을 느꼈다’는 학생은 16%였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은 일차적으로는 폭력 그 자체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한층 더 심각하고 무서운 이차적인 고통은 폭력에 굴복해 수치스러운 빵셔틀 노릇을 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나 혐오감에서 올 수 있다. 다음은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질문란에 올라와 있는 글 중 일부이다.
“님들 ··· 빵셔틀 잘 알죠? 네 제가 바로 빵셔틀인데요. 중 2때부터 시작해서 중 3때까지 빵셔틀 노릇 했어요. 무서워서 하라는 대로 다 했죠. 바보 같이…. 근데 걔네한테 복수하고 싶음. 복수하고 싶은데, 어떤 복수가 좋을까 싶어서 여러분의 대답을 기다릴게요. 죽이는 거 말고.”
이 학생은 ‘바보 같이’라는 표현을 통해 빵셔틀이었던 자기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같은 자기혐오감은 필연적으로 강한 분노감정을 유발하게 된다. 쉽게 말해, 바보 같은 자기 자신에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에 과도한 혹은 병적인 복수심이 탄생하게 된다. 대체로 병적인 복수심이란 스스로에 대한 분노감정에 가해자에 대한 증오감이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분노가 없는 정상적인 복수심은 그런 대로 견딜만하지만, 자기혐오에 뿌리를 둔 복수심은 지나치게 격렬하며 심한 잔인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파괴적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빵셔틀을 비롯한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오랫동안 고통을 겪게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좀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학교폭력은 앞으로도 계속 기승을 부릴 것 같다. 학교란 한국사회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사회를 깡패들이 지배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권력과 부를 독점한 소수 기득권층이 ‘세련된 방식을 통해’ 다수의 국민을 빵셔틀로 부리고 있는 게 한국사회의 엄연한 현실이 아니던가. 학교에는 싸움 잘하는 1진을 중심으로 한 귀족, 공부 잘하고 돈 많은 양민, 공부도 못하고 소심해서 빵셔틀이 되는 천민이라는 세 가지 계급이 있다고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도 귀족과 양민의 관계가 역전될 뿐, 이러한 계급질서와 부정의는 동일하다. 그러니 어찌 학생들만을 탓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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