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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5.1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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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3년째 한국 축제 찾는 스페인 서커스인

“난 깨달은 게 있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서 있는 곳에만 계속 머물러 있으려 한다는 거야. 그래서 난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

쇠기둥 사이에 걸어둔 외줄 위에 올라 양 팔을 벌린 채 아슬아슬 중심을 잡던 푸른 눈의 남자는 또박또박 자신만의 억양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름 5cm인 줄 위에서 몸의 반동을 이용해 하늘 높은 데까지 그네를 탔다. 행여 떨어질까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관객들은 여유롭다 못해 느긋하기까지 한 그의 표정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9일 오후 4시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 외줄타기극 한판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스페인 공연예술가 이그나쵸 헤레로(30)씨. ‘하이서울 페스티벌 2011’에 초청 돼 ‘목적지 없는 여행’이란 제목으로 공연 중이다. 열다섯 살 때 학원에서 처음 서커스를 배웠고 대학 졸업 후 스페인 카람파 서커스 학교에 입학한 헤레로씨는 러시아 중국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연극과 춤으로 외연을 넓혔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종합예술을 하는 공연예술가”라 칭했다.

이번 작품의 특징은 대사가 모두 한국어라는 점. 3개월 전부터 대본을 외웠다는 그는 “유투브를 통해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인 친구에게 세부적인 발음과 억양을 배웠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밥 먹었어요”등 일상 생활어도 제법 자연스러웠다.

그가 한국을 찾게 된 건 2009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시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연출가와의 인연 때문이다. 당시 축제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수택’이란 이름의 감독이 한국 공연을 주선했고 그를 통해 과천한마당 축제를 한국에서의 첫 무대로 삼은 지 벌써 3년이 됐다.

그는 “매년 한국을 방문, 한 달씩 머무르며 한국 공연예술가들과 많이 만났다”며 “특히 한국 전통 줄타기를 보며 당시 민심을 해학적 요소로 풀어내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방인의 눈에도 한국인들의 생활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관객들을 보면 다들 웃고 있지만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여유가 없는 모습이었어요.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얼굴에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답답한 일상에 안주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 떠나자’는 제 극의 주제처럼 여러분들도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서커스 인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특히 아버지로부터 ‘넌 결국 해낼 수 없을 거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해외 공연을 다닐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상처를 다 잊지는 못한 것 같다. ‘하늘을 나는 새’, ‘바다 속 물고기’같은 소재로 자꾸 찾는 걸 보면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의식이 투영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을 무대로 활동해온 그는 “차후에는 한국의 공연예술가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고 싶다”며 “페스티벌에 참가한 동료들과 조율 중”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10일 마지막 공연 뒤 한국에 머무르다 이달 말 스페인으로 떠날 예정이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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