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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맹학교의 작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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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맹학교의 작은 기적

입력
2011.05.1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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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청아한 목소리로 심청을 연기하던 신진희(17ㆍ중3)양은 감정이 고조된 듯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나란히 앉아 능란하게 대본을 읽어 가던 KBS의 성우 전숙경씨 등은 눈물을 참느라 힘든 모습이다. 개국 10주년 맞은 `국악방송(수도권 FM 99.1㎒)이 7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국립서울맹학교 대강당에서 펼쳤던 낭독 음악극 ‘헬렌 켈러 심청’은 무대 예술이 지향해야 할 감동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이라는 사실을 웅변한 마당이었다.

오전 10씨30분께 재학생 150여명이 손으로 더듬으며 자리를 찾아가면서 공연장은 모습을 갖춰 갔다.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을 국악 앙상블 시나위프로젝트가 애잔한 연주를 하면서 분위기는 익어 갔다.

작품은 왕비가 된 심청이 장애우들을 위해 큰 일을 하러 미국의 헬렌 켈러를 만난다는 줄거리의 낭송 음악극이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낭독을 시작하자 옆자리의 시각 장애 학생들은 손끝으로 열심히 ‘읽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모처럼 무대로 돌아온 유 전 장관은 영락없이 대본을 리딩하는 배우의 모습이었다. 국악 퓨전 밴드 반주 속에 전문 소리꾼 구음도 뉴에이지풍의 피아노에 얹혀 판타지를 엮어 갔다.

목청 좋은 맹아들은 성우가 서러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3D도 모자라 4D까지 들먹이는 감각 산업이란 얼마나 차별적이며 기만적인지를 입증하는 듯 했다.

객석의 반응 또한 색다른 풍경이었다. 그들은 숨소리도 안 내고 집중했다. 개콘 방청석류의 웃음은 없었다. 폭소가 나올 법한 대목에서 맹아들은 그들 간의 유대를 확인하듯 즐겁고 낮은 웃음을 흘리다 심청을 마중 나온 미국인이 우스꽝스럽게 영어로 떠들자 기다렸다는 듯 뒤집어졌다. 강당 내 모든 사람들은 마치 폭소를 처음 터뜨려 본다는 듯 배를 잡았다. 육안이 아닌 심안(心眼)으로 교감한 자들끼리의 유대감이었다.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자리에요. 집에서, 차 안에서 다섯 번 봤어도 결국 즉흥 무대죠.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의 눈이 있어요. (정상인들도) 마음을 열어 주면 느낄 거에요.” 신양이 말했다. 신양에겐 이 작품은 자기 발견의 무대이기도 했다. “이번을 계기로 낭송에 특기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그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졸업하면 의료재활 심리학 사회복지학 공부를 할 계획이다. 그는 “‘전원일기’로만 알았던 유 전 장관이 수고했다고 어깨 툭툭 친 것을 못 잊을 것”이라고도 했다. 1시간 30분 간의 무대 실황은 12일 밤 10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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