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를 탈출하는 아프리카 난민과 이주민 72명을 태운 소형 선박이 3월25일 트리폴리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트리폴리에서 290㎞ 떨어진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 리비아 카다피군의 박해와 내전을 피해 살길을 찾아 떠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꿈은 출발 18시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배가 고장을 일으킨 데다 연료마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탑승자들은 위성전화로 로마의 난민보호단체 '하베시아'에 위급 상황을 알렸고, 이 단체의 표류 신고를 접수한 이탈리아 해안경비대는 즉각 경보를 발령했다. 뒤이어 헬리콥터가 나타나 이들을 발견했지만 "구조 보트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다.
기약없는 나날을 보내던 표류선은 3월29일 기적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소속인 프랑스 항공모함 샤를드골함과 조우할 수 있었다. 샤를드골함에서 날아온 전투기 2대가 배 위를 선회하자 난민들은 굶주린 아기 2명을 번쩍 들어 보이며 구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사였다.
표류가 길어지면서 배고픔에 지친 탑승자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다. 출항 17일째인 4월10일, 배가 도로 리비아 즐리탄 해변 근처로 떠내려 왔을 땐 11명만 생존해 있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생존자 1명은 육지를 밟자마자 숨을 거뒀고, 카다피군이 이들을 나흘간 감금한 탓에 또 다른 1명도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NATO군이 난민들의 조난 신고를 받고도 구조를 외면해 60여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제 인권단체들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다. 국제해양법상 군함을 포함한 모든 배는 조난 구조 요청을 받았을 때 도움을 주도록 돼 있다. 카르멘 로메로 NATO 부대변인은 9일 관련 보도를 전면 부인했지만, 국제적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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