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용의가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9일 베를린 발언은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에 전환점을 만들겠다는 우리 정부의 거듭된 고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50여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서울 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베를린 선언'은 북한을 국제사회에 복귀시킴으로써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의지도 피력한 셈이다. 이는 최근 김 위원장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통해 전달한 남북 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우회적 답변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는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사과를 사실상 남북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설정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이를 거부하고 있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던 2월 남북 고위급군사회담을 위한 실무회담 역시 이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민간 차원 및 당국간 대화를 갖자고 대화 공세를 퍼부었으나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나 비핵화 의지 표명 등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물론 미국도 최근 남북 대화를 은근히 재촉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진정성 표명을 전제로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대통령의 베를린 발언은 2009년 9월 뉴욕에서 밝힌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제안과 궤를 같이 한다. '그랜드 바겐'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 타결" 구상이다.
청와대 당국자는 이날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 초청의 전제로 밝힌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합의'에 대해 "북한이 남북 비핵화 회담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게 필요하고 나아가 6자회담에서 '그랜드 바겐' 성격의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절차와 목표 시한에 따라 경제지원과 협력을 할 수 있고, 어떤 안전보장과 신뢰회복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진정성을 보인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경제협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의지와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올해 신년 연설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제안에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랜드 바겐' 구상은 6자회담 당사국의 호감을 얻었지만 북한이 결국 수용하지 않았다. 북한은 오히려 무력 도발로 대화 자체를 단절해 버렸다. 베를린 발언으로 일단 공은 북한에 넘어갔다. 하지만 우리 정부도 실현 가능한 남북 비핵화회담의 '각론'에 대해 좀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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