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새로운 원내 지도부로 부상한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의 행보가 심상찮다. 경선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과 당선된 뒤 추가로 내놓은 정책들의 상당수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과 방향을 달리하는 이른바 '반MB 정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향후 당ㆍ정ㆍ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황 원내대표와 이 정책위의장이 공동으로 제시한 정책 중 대표적인 반MB 정책으로는 '당 주도의 추가 감세 철회'부분이다. 감세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는 현정부의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다.
황 원내대표는 9일 "정부가 추진해온 법인세ㆍ소득세 등 추가 감세 정책을 철회하겠다"면서 "감세 철회로 생긴 예산과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 등으로 10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대학등록금, 젊은 부부들의 육아와 주택 마련 등 복지 예산으로 돌리겠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이날 서민 정책 강화 방안에 대해 "전ㆍ월세 가격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지역에는 전ㆍ월세 상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정부는 시장질서를 저해할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해 왔다.
또 현정부 일각에서 제기된 대기업의 초과이익 공유제와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 참여에 대해서도 이 의장은 "대기업의 초과이익 공유제와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 참여는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만큼 반대한다"며 "국민연금이 대기업에 주주 의결권을 행사하면 관치가 될 우려가 크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 원내대표는 나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처리 문제에 대해 "몸싸움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뒤 "대통령도 인간인지라 시간이 갈수록 민심과 유리될 수 있으므로, 국민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기능이 강화돼야 하는데 그런 임무가 국회에 있다"고 작심한 듯 말했다.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신임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제시하는 정책들이 현정부의 기조와 배치되는 것으로 나타나자 사뭇 긴장하는 눈치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가 입법 목표로 삼는 주요 법안들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릴 경우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더욱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여당의 새로운 원내 지도부의 공약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최대한 협조할 것은 협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국가재정의 안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도 곁들였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15일 이후 고위 당ㆍ정ㆍ청 협의 등을 갖고 감세를 비롯한 주요 정부 정책에 대한 논의에 착수할 방침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이 감세 철회를 주장한다고 해도 정부의 정책 기조가 곧바로 변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국정 운영의 공동 주체로서 앞으로 긴밀히 논의하고 숙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책을 둘러싼 당ㆍ청 간 힘겨루기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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