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가 자회사의 매출을 빼앗아가는 희한한 통신 결합상품이 등장해 물의를 빚고 있다. 문제가 된 상품은 SK텔레콤과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함께 제공하는 ‘TB끼리 온가족 무료’ 요금제다.
1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TB끼리 온가족 무료 요금제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이용자가 2명이면 인터넷전화(VoIP)를, 3명이면 초고속 인터넷, 4명이면 VoIP와 초고속 인터넷을 무료 제공한다. 그만큼 이 요금제는 큰 폭의 요금 할인 덕분에 가입자 쟁탈전이 치열한 통신시장에서 SK텔레콤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SK브로드밴드 입장에서도 요금할인을 빌미로 타사의 유선상품 가입자를 빼앗아 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SK텔레콤 대리점에서 기존 SK브로드밴드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동통신 가입자를 추가하면 초고속 인터넷을 무료로 쓸 수 있다며 해지를 종용한 뒤 ‘TB끼리 온가족 무료’ 요금제에 다시 가입시키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일부 SK텔레콤 대리점은 해지 위약금까지 대신 내주며 20만, 30만원대의 보조금까지 제공하고 있다. 원래 타사 가입자를 상대로 이 같은 영업 행위를 해야 하지만 SK텔레콤 대리점에서 손쉬운 방법을 찾다 보니 이미 가입자 정보를 모두 갖고 있는 자회사를 상대로 가입자 빼오기를 하는 것이다.
그 바람에 SK브로드밴드는‘TB끼리 온가족 무료’요금제 가입자가 늘어나도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늘지 않고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SK텔레콤에서 가입자를 대신 확보한 셈이어서 이에 대한 재판매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오히려 SK브로드밴드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기존 타사와 경쟁도 벅찬데 모회사까지 내부의 적으로 돌아선 셈”이라며 “상황이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일부 SK텔레콤 대리점들이 아랫돌 빼서 윗돌을 고이는 식의 무리한 영업을 하는 이유는 할당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월 20, 30건의 가입자 할당이 떨어졌다”며 “그 바람에 기존 SK브로드밴드 유선통신 가입자들이 최근 대거 이탈했다가 ‘TB끼리 온가족 무료’요금제에 다시 가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SK브로드밴드에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끓이면서도 모회사인 SK텔레콤의 눈치를 보느라 항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박인식 SK브로드밴드 사장부터 SK텔레콤의 기업사업부문장을 겸하고 있어 사실상 SK텔레콤 업무를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SK브로드밴드 직원들은 실적 하락을 감내하며 속으로만 SK텔레콤을 원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치 SK텔레콤을 먹여 살리기 위해 SK브로드밴드가 존재하는 것 같다”며 “이런 구조라면 결합상품이 등장할수록 SK브로드밴드만 불리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일부 대리점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강제 할당이 아닌 일정 기준 이상의 가입자를 모으면 성과금을 지급하다보니 일부 대리점이 과욕을 부린 것”이라며 “SK브로드밴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결합상품이어서 SK브로드밴드에 해가 되는 영업행위는 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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