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소장 쇄신 모임 '새로운 한나라'를 이끌고 있는 정태근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수행단장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누구도 그를 친이계로 꼽지 않는다.
경북 문경 예천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한성 의원은 18대 국회 초반만 해도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의원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공개 활동에 잇달아 모습을 드러냈고, 8일에는 박 전 대표의 귀국길을 마중하러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친이계∙친박계로 선명하게 갈라져 있던 한나라당의 계보 경계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요약하면 중간그룹이 커지고, 중립 혹은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 가는 '월박(越朴)그룹'이 현실화하고 있다. 계보 지형의 변화는 지난 6일 원대대표 경선에서 비주류 원내대표를 탄생시킨 동력이기도 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앞으로 계보 경계선이 급격히 흔들리면서 '헤쳐 모여'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이계였다가 중립 지대로 몸을 옮긴 의원들은 특히 수도권에 많다. 정두언 의원을 비롯, 김성태, 권영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임해규 김기현 박순자 김동성 김소남 윤석용 의원 등 다수 친이계 의원들도 이번에 결성된'새로운 한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여당에서 중립으로 분류되는 의원은 18대 초반 20명 안팎에서 최근 40~50명까지 늘어났다는 분석이 있다.
월박 그룹도 현실화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지금까지 월박이란 말은 가능성으로만 거론돼 왔지만 이제부터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 이상득 의원 계보로 분류되던 의원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 이명규 장윤석 이철우 의원 등은 사석에서 "차기는 박근혜 아니냐"는 말로 자신의 성향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보여준 이상득계 의원들의 비주류 원내대표 지지는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당 주류의 두 축을 이뤘던 이재오계와 이상득계의 결별은 시간 문제"라는 예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간 날선 감정싸움을 벌여온 이상득계와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가 한 배를 타는 모양새도 만들어졌다.
여권 지형의 변화는 결국 6월 말~7월 초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개최되는 전당대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힘을 발휘한'친박계+중립+이상득계'연합 구도가 전당대회까지 유지된다면 비주류 원내대표에 이어 비주류 당 대표도 탄생할 수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친박계가 직접 후보를 내기보다 중립소장파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많아 전당대회에서 '젊은 대표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친이계 몰락 가능성에 위기감을 느낀 이재오계와 이상득계가 주류 당 대표 선출을 도모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친이계의 세력 약화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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