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죄로 내팽개쳐진 부모형제의 억울한 죽음… 노여움 잠시 내려놓으시고 바람 따라 구름 타고 이곳에 왕림하시어 우리와 함께 억울함 나누소서."
전통 장례식이 시작되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빨간 카네이션을 상여 위에 올렸다. 흰 국화도 함께 놓였다. 태어나 처음 챙겨보는 어버이날, 살아생전 가슴에 카네이션 한 번 달지 못하고 이역(異域)에서 스러져간 어머니 아버지들은 죽어서 자식들에게 감사의 꽃을 받았다. 유해가 없어 제대로 장례 한 번 치르지 못한 원혼들은 수십 년 만에 영면에 들게 됐다.
8일 충남 천안시 망향의동산에서는 특별한 어버이날 행사가 열렸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희생자 101인을 위한 합동 추모제다. 망향의동산은 일제 말기 징용ㆍ징병 등 강제로 끌려갔다가 사망했거나 행방불명 된 희생자 257명의 위패가 봉안된 곳.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유족 등 시민 3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영령을 위로하는 장례식 등을 열고, 그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태평양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행사가 처음은 아니다. 1998년 8월 징용자들이 기차를 탄 서울 용산역에서 한 차례 있었고, 2000년 6월에는 전북 진안군 마이산 탑사에서 희생자합동천도제를 올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늘도 슬픔을 참지 못한 듯 큰 비가 내렸다. 이날은 달랐다. 처음 열린 장례식에 이제서야 한을 푼 듯 밝은 햇살이 후손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손자 손녀들도 활짝 웃었다.
그러나 아들 딸들은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을 결국 터뜨리고야 말았다. 돌을 갓 지났을 무렵, 아버지가 중국으로 강제 동원된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이춘자(70)씨는 "34통의 편지만이 유일한 아버지의 흔적"이라며 "딱 한 달만 있으면 맛있는 것도 해드리고 같이 여행도 갈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가슴에는 손자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줬다는 빨간색 종이 카네이션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신명옥(65)씨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의 시어머니는 22세 때 남편이 중국으로 강제 동원돼 홀로 40여년을 살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누가 제일 보고 싶은가 물었더니 '영감'이라 하시더라고. 아들 삯바느질로 대학까지 보내고 먹고 사느라 남편 생각 안 한다던 분이거든." 그는 "엄마"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유족대표 이희자씨는 "이제는 자식들도 나이가 들어서 70, 80대가 됐다. 더 늦게 전에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싶었다"고 합동추모제의 의의를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무능과 외면으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 희생자들의 유해발굴과 조사, 강제동원 명부의 즉각 공개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일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한 다짐의 자리"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한일강제병합 100년 담화에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민간인 유골 봉환을 약속했지만 이후 일본 정부는 "민간 노무자 동원은 기업들이 한 것이므로 정부 책임이 아니다"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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