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선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적합업종 선정은 대ㆍ중소기업의 상생 협력 정도를 평가해 내년 초 발표하는 동반성장 지수와 함께 정부의 동반성장 의지를 뒷받침하는 핵심 사업이다.
동반성장위는 5월 중 중소기업으로부터 적합업종 신청을 받아 6~7월 신청 업종에 대한 적합성 검토 및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8월에 적합업종을 최종 발표할 계획이다.
쟁점은 과연 어느 업종(품목)이 선정되느냐다. 당초 가이드라인 초안에 들어있던 시장규모ㆍ중소기업 숫자에 따른 ‘컷 오프제’가 막판에 제외된 게 대표적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적합업종 선정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대ㆍ중소기업 모두 한치 양보도 하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경쟁을 제한하면 기술개발이나 품질향상을 게을리하게 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며 업종 선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진입을 막아 중소기업에 최소한의 생존권은 보장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이드라인의 세부내용 확정을 두고서도 대ㆍ중소기업간 물밑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이번에 확정된 기준은 ▦제도운영의 효율성 ▦중소기업 적합성 ▦부정적 효과 방지 ▦중소기업 경쟁력 등을 중심으로 한 11개 항목이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5월 중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대기업을, 김수환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중소기업을 대신해 이슈공방에 나섰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 적합업종선정찬성
"대기업의 독과점 심화, 中企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 마땅"
"시장경제에 반한다는 이유로 30여년 시행해 온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지 이제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적합업종·품목 설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동반성장위원회가 4월말 중소기업 적합 업종ㆍ품목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관련 로드맵을 제시한데 대해 대기업의 우려가 매우 크다. ▦과거 실패한 정책인 고유업종제도의 재탕으로 진입규제는 악질 규제라는 것 ▦과거 30년간 보호받던 업종이나 기업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정부 보호아래 나약해진 중소기업이 계속 지원 받으려고 성장을 꺼리는 사이 해외기업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소비자권리침해가 크게 우려된다는 것 등이다. 급기야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제도는 시대착오적 사전 규제라면서 원점에서 재검토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우려로 과거 고유업종제도와 지금 준비되고 있는 적합업종·품목제도와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경제사회정책이나 제도의 문제에 대한 우려는 대부분 제도 자체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며, 제도의 운영 여하에 따라 기우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2006년까지 30년 가까이 시행됐던 고유업종제도는 한번 지정되면 해제가 어려운 영구적 제도였으나, 적합업종·품목제도는 3년 한시적이며 1회에 한해 더 연장할 수 있는 3+3년의 일몰제를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에 안주해 성장을 꺼릴 우려는 없다. 또 적합업종·품목 가이드라인의 하나로 해외수입 비중이 매우 낮은 품목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외 기업이 시장을 잠식할 우려도 적다. 소비자 후생측면에서 소비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소비자만족도를 적합업종·품목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엄격한 인증시스템을 통해 검증된 경우에만 참여토록 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또 대기업 협력사의 피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과거 고유업종제도는 지정 후 사후 관리가 없어 중소기업이 아무런 자구노력이나 기술개발노력 없이도 보호막에 안주할 수 있었으나 새로운 제도는 기술개발 및 연구개발 노력이나 경쟁력 제고노력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대기업이 우려하는 것처럼 적합업종제도가 운영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통계청 '광업·제조업조사보고서' 상의 2,100여개 품목에 대해 적합업종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뮬레이션 분석을 한 결과 약 5% 내외의 품목만이 가이드라인을 충족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정책이나 제도도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인 것은 없다. 시장 실패와 정책 실패 사이를 정반합(正反合)의 원리로 맞춰가는 게 중요하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시장주의적인 접근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얼마나 정책의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느냐 혹은 정책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시장이 얼마나 공정한 게임의 룰이나 환경을 지니고 있느냐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경제에 반한다는 이유로 30년 가까이 시행해온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지 5년만에 다시 적합업종ㆍ품목 설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시장경제환경이 아직은 매우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실제로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 소속 대기업들은 지난 5년간 급속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38개 기업이 과거 고유업종제도에 속했던 50여개의 업종에 참여했으며, 이런 추세는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ㆍ품목의 설정은 이론적으로는 독과점 시장구조에 대한 공공규제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에게 대등한 경쟁권과 함께, 최소한의 생존권(생업권)을 확보토록 함으로써 반경쟁 질서적 시장침입을 규제해 경쟁질서를 효과적으로 지탱하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기반구축을 통해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수환 중소기업연구원 전문위원
● 적합업종선정반대
"동반성장 앞세워 지나친 보호막, 경쟁력 되레 저하될 것"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지정과 함께 그 사업을 중소기업에게 이양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지우는 것은 사유재산권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나라 헌법질서 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2일의 적합업종·품목 관련 공청회는 이해당사자 간 치열한 찬반논란이 있었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가 어떤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적합업종·품목 선정기준 그 자체에 집중됐다. 이 제도는 이미 2006년 폐지되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는 진입제한적인 성격을 갖는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는 상생법 제35조 제3호를 근거로 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적합하다고 인정해 중소기업청장이 지정하는 업종 및 품목의 사업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기업 등은 산업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를 중소기업에 이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공청회에서 논의된 바에 따르면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으로 선정되면 재지정을 통해 최장 6년간 '보호'할 수 있다. 이 같은 장기간의 보호기간 설정과 함께 대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중소기업에게 이양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이 제도 자체가 진입제한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는 경쟁을 본질로 하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하며, 기업의 영업자유와도 배치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으로 선정된 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기업의 재산권 침해 가능성이다. 이 제도는 적합성을 검토한 후 선정된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자율적인' 시장진입 자제 및 사업이양을 권고하고 대기업의 사업을 제한할 수도 있다. 또한 적합업종·품목에 대기업이 진입하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에 동반성장지수 점수산정에서 감점할 계획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으로 지정되는 경우 대기업이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을 중소기업에 이양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그 협력사와 소비자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폐지와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의 재도입과 같이 일관성을 결여한 정부정책 하에서 일부 대기업들이 정책의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문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지정과 함께 그 사업을 중소기업에게 이양하도록 노력할 의무를 지우는 것은 사유재산권과 직업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나라 헌법질서 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의 선정이 중소기업의 동태적인 경쟁력과 효율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는 고유업종으로 지정된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억제하고 경쟁력 있는 외국 기업체의 수입침투를 초래하였다는 비판에 따라 제도 자체가 폐지된 바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선정을 위해 지금 검토하고 있는 경제적인 기준은 제도운영의 효율성, 중소기업 적합성, 부정적 효과 방지, 중소기업 경쟁력 등과 같은 정태적인 지표들이 대부분이고 또 마켓팅 능력이나 일반관리 측면의 경제성은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선정된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이 장기 경쟁력을 강화해 최장 6년의 보호 후 국내외 기업과 대등한 경쟁력을 갖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마지막으로 좁은 시장에서 활동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개방화이다. 독일 중소기업은 시장을 좁고 깊게 정의하고 난 다음 좁아지는 시장의 영역을 세계로 넓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고 하였지만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정책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탄생하기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선정은 경쟁이 제한되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강화되어 중소기업 스스로 기술개발이나 품질향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제도 도입은 재고가 필요하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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