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 왕따' 24시간 피할 길이 없다
# 경기도 A초등학교 5학년 B양은 친구로부터 자신의 안티카페가 개설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OO는 정말 더러워. 옆에 오면 정말 짜증나", "미친 X, 까불지 못하게 해야 돼" 등이 게시판에 올려진 글의 제목이었다. 같은 반은 물론이고 옆 반 학생들까지 30여명이 가입한 안티카페에는 자신에 대한 비방글 투성이였다. 한 학생이 B양을 놀리는 글을 올리자 "OO는 바보다", "재수없다"며 맞장구 치는 댓글이 이어졌고, 사진 자료실에는 B양의 모습을 포토샵으로 혐오스럽게 변형시킨 사진들이 올려졌다. B양이 비슷하게 '왕따'를 당하고 있는 남학생과 사귀고 있다는 글과 심지어 성적으로 비하하는 댓글까지 달렸다. B양의 어머니는 "카페를 만든 학생들을 찾아내 잘못을 지적하자 '연예인들도 안티카페가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되물어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 서울 C중학교 3학년 D군은 리더십도 있고, 친구도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적극적인 성격 때문에 가끔 조심성 없는 행동을 했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조금씩 미움을 샀다. 언제부턴가 D군이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하자 친구들은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다 너를 싫어한다"는 내용의 쪽지를 욕설과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쪽지가 반복되자 D군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고, 행동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D군의 부모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담임 교사가 학생들에게 잘못을 지적하자,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D군과 친한 척했지만 집에 가서는 메신저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후 D군은 등교를 거부를 하고 있다.
학교 폭력이 진화하고 있다. 교실에서의 직접적인 폭력 대신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폭력이 늘어나고 있고,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나이도 점점 어려져 초등학생 때부터 심각한 학교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청소년의 달' 5월을 맞아 지난 주 공개한 '2010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집단따돌림, 인터넷 폭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학생이 56.5%로 '신체폭행, 금품 갈취 등 드러나는 폭력이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41.9%)보다 많았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53.5%가 초등학교 때 처음 폭력을 당했고, 가해 경험이 있는 학생의 57.3%도 초등학교 때 처음 폭력을 휘둘렀다고 답했다.
특히 학교폭력의 피해 및 가해 시기가 초등 4~6학년에서 정점을 이루고, 초등 1~3학년 가해자의 비율이 2009년 11%에서 2010년 14.8%로 늘었다. 이 조사는 지난해 말 전국 초중고생 3,56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청예단 산하 학교폭력SOS지원단의 김승혜 팀장은 "이전까지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주로 괴롭힘을 당했고, 집에 돌아가면 잠시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젠 사이버 폭력 때문에 24시간 내내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온라인 집단따돌림은 메신저 집단 차단, 안티카페 개설, 일촌 거부 등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김 팀장은 "김수철 사건 등으로 교내 학생에 대한 외부인의 폭력이 사회 이슈화되고 안전대책이 쏟아졌지만 정작 교실에서 학생들간에 은밀히 벌어지는 폭력 문제는 간과되고 있다"며 "가해학생들은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죄책감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어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청소년 폭력 뺨칠 정도 가혹… 새싹교실은 이미 '약육강식 정글'
초등학교 내 학교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형사사건으로 다뤄질 법한 가혹한 폭행으로 피해 어린이가 병원 신세를 지는가 하면, 집요하게 괴롭혀 친구에게 모욕과 수치, 좌절을 겪게 하면서도 죄의식을 못 느껴 교사와 학부모, 전문가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모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매를 둔 A씨는 두 딸이 지난해 12월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한다. 5학년 큰딸 B(11)양이 학교 인근에서 같은 학년 친구 4명에게 2시간 동안 끌려 다니며 폭행을 당한 것. 친구들은 B양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겨가며 발로 차고 때리길 반복했다. 이들은 3학년 동생(9)도 함께 끌고 다니며 언니가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게 했다. 때리는 동안 교사나 부모에게 알리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큰딸은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고, 동생은 그 일을 겪은 뒤 아침마다 눈물을 짓고 있다. 전말을 알고 분노한 A씨를 더 기가 막히게 한 건 "단순한 장난이었다"는 가해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그는 "겨우 초등 5학년 아이들을 법적으로 고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처벌이나 대안마련도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아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
서울 모 초등학교 6학년인 C(12)군은 올 2월부터 전교생 앞에서 심한 모욕을 당해왔다. 같은 반 남학생 5명이 C군에게 "우리가 허락한 길로만 다니라"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실 바닥에 테이프로 C군이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을 표시했다. 아예 C군의 책상을 둘러싼 반경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협박하기도 했다. 'C군이 싫고 밉고 짜증나서, 재미로 장난으로' 한 일들이다.
"자리를 벗어나면 때리겠다"고 협박하면서 C군의 학용품 책 등을 영역 밖으로 던져 놀리거나 빼앗아서 돌려주지 않는 일이 반복됐다. 수십 명의 학생들은 이런 공개적인 괴롭힘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를 막거나 C군에게 손을 내미는 학생은 없었다. 모욕과 수치를 견디지 못한 C군이 등교거부를 하고 나서야 이 같은 사실이 학교와 교사들에게 알려졌다. 사후 특별교육에서 가해학생들이 보인 반응은 "다른 애들도 그러는데 나만 걸려서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실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중 학교폭력 최초 가해 경험시기를 초1~3학년이라고 답한 비율은 2009년 11%에서 2010년 14.8%로 늘었다. 이처럼 학교폭력 가해 연령이 낮아지고 그 수위가 심각해지는 원인을 전문가들은 인성교육과 가해학생에 대한 지도 부재,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 접근 연령이 낮아진 점 등에서 찾고 있다.
김승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SOS지원상담팀장은 "인성이나 공동체 의식을 배울 기회보다는 성적 위주의 교육이 초등학교 수준에서부터 이뤄지고, 가해학생에 대한 강도 있는 처벌 조치도 없다"며 "특히 말초적인 매체에 어렸을 때부터 노출되고 스트레스와 분노조절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상황도 일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권, 배려, 존중보다 약육강식 논리가 만연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팀장은 "가해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걔가 나보다 못나서 심부름시켜도 다 해주는 것이다, 약하니까 당연히 때릴 수도 있다'는 말들이 거침없이 나와 상담교사들이 깜짝 놀랐다"며 "어린 학생들일수록 재벌가의 매값 폭행사건 등이 불거지는 사회 분위기, 성인들의 인식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S초등학교 이모(28)교사 역시 "저학년 사이에서도 약하면 당한다거나 왕따나 빵셔틀을 안 당하려면 센 척, 있는 척해야 한다는 말이 있고 센 척이라는 말의 이니셜을 딴 SC라는 은어까지 유행한다"며 "이런 인식을 개선해 줄 교육당국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초등학생간 性폭력도 다반사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접수된 학교 폭력 상담 사례에는 성폭력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음란 동영상을 본 초등학생들이 이를 흉내 내거나 휴대전화로 나체 사진을 찍도록 하는 등 수법도 어른들의 그것과 닮았다.
지난해 3월 지방의 모 초등학교 축구부인 5학년 A군은 6학년 선배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음란 동영상을 본 선배들이 A군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성기를 만진 것이다. 피해 학생은 사건 이후 음란 동영상에 집착하다가 고교 1학년인 친형이 자고 있을 때 몰래 형의 성기를 만지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A군은 "축구부 형들이 했던 일이라 문제가 되는 줄 몰랐고, 그 일을 겪고 난 뒤 자꾸 야한 장면이 떠올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모 초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됐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5명이 같은 학교 1학년 남학생의 바지를 벗기고, 그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는 등 성추행했다. 가해학생들은 주변에 있던 2학년 학생들의 신고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특별교육 및 상담을 받았다. 이 학생들은 "인근 중학교 형들이 자신들에게 똑같이 사진을 찍길래 장난으로 생각했을 뿐 잘못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남학생이 같은 반 남학생에게 옷을 벗은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등 휴대전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했다. 가해학생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피해학생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을 퍼뜨려 '왕따'를 시킨 사실도 드러났다. 피해학생은 상담에서 "요구를 들어주면 왕따를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청예단 관계자는 "음란물의 범람으로 어린 학생들까지 광범위하게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며 "학부모들이 평소 자녀들의 컴퓨터와 휴대전화 메시지들을 잘 살피는 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 가해 학생 41% "처벌·꾸지람 없었다"
"이것도 학교폭력이에요?", "이게 왜 폭력이에요?"
교사와 상담사가 학교폭력예방교육, 특별상담교육 과정에서 가해학생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학교폭력 가해 이후에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가해행동이 장난이고, 용납 받는 일이라는 인식을 쌓아온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반 친구를 '꼬붕', '찐따'라고 호칭하며 지속적으로 심부름을 시켜온 서울 모 초등학교 최모(10)군은 지난해 친구가 등교를 거부한 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에 회부됐고, 전문 상담기관에서 특별상담을 받게 됐다. 교육에 참여한 최군은 "별 뜻 없이 재미로 친구를 놀린 것인데 그게 왜 학교 폭력이냐"고 되물었다. 괴롭힘과 놀림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수 차례 상담이 진행 된 후에야 "정말 몰랐다. 진작 알았으면 그렇게까지 오래 괴롭히지도 않고, 내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말까지 듣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했다.
실제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학교폭력 가해학생에게 '가해 후 발생한 일의 유형'을 묻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41%)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이후 가해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스스로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58.2%)', '선생님에게 꾸지람 들어서(7.4%)', '학년이 올라가서(7.3%)'등이 1~3위로 예방교육이나 심리치료를 받은 학생은 2.2%에 불과했다. 또 '가해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와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각각 11.4%, 10.7%나 됐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거의 없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데는 각 학교에 구성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의 상당수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는 공개하지 않고, 위원도 교장이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축소ㆍ은폐할 여지가 상당하다. 실제로 연간 교육과학기술부가 파악하는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000여건이지만 경찰청에 접수된 청소년 폭력 사건은 연간 2만5,000여건이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개정안에 따라 이르면 올해 2학기부터 위원의 절반 이상을 학부모 위원으로 구성할 수 있고 회의록을 열람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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