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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의 입자’ 둘러싼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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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의 입자’ 둘러싼 수수께끼

입력
2011.05.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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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신(神)의 입자’가 있었다. 그는 우주와 함께 태어난 모든 입자에게 명했다. “입자들이여, 질량을 가져라”라고. 16개 입자들에게 각각 질량을 부여하고 난 신의 입자는 신비롭게도 홀연히 사라졌다. 입자들은 신의 입자가 내린 명에 따라 각자의 질량을 받아 들고 물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간을 비롯해 지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이렇게 생겨났다.

최근 신의 입자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말 그때 그 입자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한편에선 조심스럽게 다른 소문도 돈다. 신의 입자가 어쩌면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스위스서 날아든 소문

신의 입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의 진원지는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있는 거대강입자충돌기(LHC) 안이다. 지난달 LHC로 실험하는 과학자들이 “힉스(higgs)를 찾은 것 같다”고 추측한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힉스 발견’으로 부풀려졌다. 그들이 말한 힉스가 바로 신의 입자다.

세상의 입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페르미온. 서로 친하지 않아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다른 부류는 보존이다. 자기들끼리 뭉쳐 있으려고 한다. 페르미온은 주로 물질을 구성하는 역할을, 보존은 우주의 여러 힘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 입자가 각자 역할을 수행하려면 질량이 있어야 한다.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그 질량을 부여한 존재를 힉스라고 제안했다. 물리학자들은 이 시나리오를 ‘표준이론’이라고 부른다. 결국 힉스는 표준이론의 근간이자 질량의 근원이다. 힉스가 없으면 우주의 질량은 0이다.

표준이론에서 페르미온은 12개, 보존은 4개다. 지금까지 모두 발견됐다. 이제 힉스만 남았다. 힉스의 존재만 확인되면 표준이론은 완벽한 이론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리학자들이 힉스 찾기에 애를 태우고 있는 이유다.

LHC는 인간들이 힉스를 찾기 위해 건설한 지름 8km, 둘레 27km에 달하는 대형 실험설비다. 이 설비는 양성자 2개를 강력한 자기력과 전기력으로 빛의 속도 가까이 가속시켜 엄청난 힘으로 서로 충돌하게 한다. 그러면 우주 초기의 대폭발(빅뱅) 당시와 비슷한 상태가 재현된다. 그때처럼 힉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힉스는 다른 입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임무를 마치고 스스로 붕괴하면서 빛 알갱이인 광자(光子)를 방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LHC에선 광자가 특히 많이 검출됐다고 한다. 힉스가 나타나 방출했을 걸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실 광자를 방출하는 입자는 힉스 말고도 더 있다. 힉스가 과연 얼마나 많은 광자를 방출하는지도 아직 모른다. 김수봉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는 “힉스가 정말 나왔는지 확신하기엔 데이터 양이 너무 적다”며 “LHC 실험을 3~7년은 더 반복해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벽한 이론을 향해

표준이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힉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입자다. 그것도 단 하나만 있어야 한다.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LHC나 ILC에서도 힉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수십 년간 세워온 표준이론 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리학자들은 LHC로도 모자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설비인 국제선형충돌기(ILC)까지 구상하고 있다. LHC는 원형인데 비해 ILC는 직선형으로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LHC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로 전자와 양성자를 충돌시키기 위해서다. 에너지가 클수록 힉스 발견 가능성도 커지리란 예측이다. 아쉽게도 예산 문제로 건설이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많은 과학 발전은 기존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아예 뒤집는 데서 시작됐다. 뉴턴의 고전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말이다. 고전역학은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데는 잘 들어맞았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계가 명확했다. 이를 해결한 게 상대성이론이다. 덕분에 빛만큼 빠른 물체의 움직임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물리학자들은 이미 표준이론 이후를 상상하고 있다. 힉스가 아예 없거나 둘 이상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힉스가 여러 개인 시나리오를 물리학자들은 ‘초대칭이론’이라고 부른다. 표준이론에서 16개였던 입자가 초대칭이론에선 2배로 는다. 페르미온과 보존의 역할 경계도 불분명해진다. 어쩌면 힉스가 세상의 모든 입자 위에 군림했다는 태초의 시나리오도 수정이 불가피해질지 모를 일이다.

표준이론의 힉스는 전기를 띠지 않는다. 그러나 초대칭이론에서 힉스가 2개 이상이면 음이나 양의 전하를 갖게 된다. 김수봉 교수는 “LHC에서 만약 중성이 아니라 전하를 띤 힉스가 나온다면 역시 표준이론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까지는 표준이론이 우세하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이 신의 입자의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한편에선 LHC나 IHC에서 모두 힉스가 발견되지 않길 은근히 기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힉스가 있다면 표준이론은 완성되겠지만 최종 목표를 이룬 입자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반대로 힉스가 없으면 표준이론을 뛰어넘으려는 새로운 이론들 간 치열한 선두다툼이 전개될 게다. 그 편이 더 흥미진진할 거란 기대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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